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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따뜻한 겨울 (2016년 스위스, 프랑스 여행기)

제네바 구석구석 2016년 12월 26일 아침부터 눈이 부셨다. 커튼 사이로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햇살이다!” 드디어 이불처럼 제네바를 덮고 있던 안개가 완전히 걷힌 것이다. 제네바의 취침이 끝났다. 시내를 돌아다니기에 완벽한 날씨. 오늘 우리의 일정은 제네바 구시가지를 도는 것. 쟌의 어머니께서 우리의 가이드가 되어주시겠다고 했다. “Follow me!” 늘 유쾌하신 쟌의 어머니가 외쳤다. 쟌과 나, 토마스는 어머니의 차에, 마린은 그레이스의 차에 탑승했다. 두 대의 차가 나란히 제네바 중심부를 향해 달렸다. 가는 동안, 쟌은 어머니와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고 나와 토마스는 창밖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어느새 우리의 차는 제네바 역사박물관 앞 공용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박물관은 반듯한 석조.. 더보기
크리스마스 마니또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모두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뒀던 선물을 집어들어 부엌으로 모였다. 식탁 중간에 모아 놓으니 산더미였다. 그 주위를 오순도순 둘러 앉으니 그렇게 푸근할 수가. 선물교환의 시간! 쟌의 가족의 크리스마스 전통(?) 중 하나가 마니또이다. 매년 성탄절날 이름을 뽑는다. 일 년 동안 비밀로 해뒀다가 크리스마스 때 그 사람에게 선물을 전달한다. 서로 대단한 선물을 주는 건 아니지만 매년 그렇게 서로를 챙기고, 서로를 생각하고, 서로에게 의미있는 선물을 준비하고 성탄절을 함께 보내는 모습이 감동스러웠다. 게다가 손님으로 온 나와 토마스를 위해 선물을 일일이 준비한 것도 감동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성탄절이 기독교와 함께 자리잡은 휴일이라 그리 긴 전통이나 형식이 없다. 그저 상업.. 더보기
노엘 노엘 크리스마스 당일은 마침 주일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교회에 갈 채비를 마쳤다. 스위스 와서 처음 가보는 교회. 어떤 곳일까? 우리나라처럼 크고 높은 빌딩일까? 몇 명이나 모일까? 찬양팀은 어떨까? 목사님 설교는 어떨까? 많은 것이 궁금했다. 쟌의 가족들과 쟌을 봤을 때 그들이 속한 공동체는 웬지 포근할 것만 같다.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차가 멈춰 섰다. 도착한 것이다. 내리고 보니 농장 한 가운데. 동서남북으로 펼쳐져 있는 푸른 초원. 풀을 뜯고 있는 소들. ‘한겨울에도 이렇게 푸른 풀이 돋아날 수 있구나.’ 바람을 따라 소의 목에 걸린 종이 덩그렁 덩그렁 투박하게 울렸다. 음머 – 풀내음, 소똥냄새, 농기계에 뭍어있는 오일 냄새. 할머니댁이 떠올랐다. “교회가 어디에…?” “여기야, 여기... 더보기
이게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는 스위스 뿐만 아니라 많은 유럽인에게 굉장히 특별하고 중요한 시즌이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일년을 살았다고 할 정도라니.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부모님댁으로, 친척 집으로 모여든다. 우리나라로 치면 설 명절인 셈. 스위스와 프랑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걸쳐 보통 일주일, 길게는 10일 정도의휴가를 낸다. 쟌의 가족에게 ‘성탄절날이면 매번 가족들이 다 모였냐’고 물어봤다. 마린은 딱 한 번 빼고는 그렇다고 했다. 쟌이 타국에서 NGO일을 하던 때였는데, 부모님이 쟌을 만나러 가셨다고 했다. 쟌도 그 때를 빼고는 크리스마스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왔다고. “모이면 보통 뭘 하고 시간을 보내나요?” 쟌의 집은 전통적으로(?) 마니또를 했단다. 선물을 교환하고 나면 제비뽑기를 해서 다음 년도 마니또.. 더보기
초면에 이런 질문을...?! 스위스식 친구먹기 12월 23일 저녁 “친구가 같이 놀자고 하는데 어때, 만나볼래?” 저녁을 다 먹어갈 때쯤 쟌과 마린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안될 거 뭐 있나 싶어 흔쾌히 승낙했다. 마린과 토마스, 쟌, 그리고 나 넷이서 집을 나섰다. 캄캄한 거리를 가로질러 한 5분 걸었을까. 지붕이 세모난 3층짜리 집이 나왔다. 계단을 오르자 한 이집트 유학생이 문을 열어줬다. 우리를 초대한 친구, 바쿰이었다. 활짝 웃으며 우리를 맞이하는 그의 뒤로 맛있는 볼로네즈 냄새가 났다. 함께 크리스마스 전전날을 보내려고 이렇게 맛있는 볼로네즈를 만들어 우리를 초대했단다. 아- 친구야, 우린 벌써 저녁을 먹고 왔단 말이야. 일찍 귀띔이라도 해주지……. 그랬으면 배를 비워서 왔을 텐데. 바쿰이 살고 있는 집은 한 미국인 가족의 집이었다. 그.. 더보기
늦었지만 에스칼라드! 2016년 12월 23일 저녁 저녁을 다 먹고 테이블을 치웠다. 쟌의 어머니가 예쁘게 생긴 단지 하나를 테이블 중앙에 놓았다. 초콜릿 냄비라고 했다. “우리 에스칼라드를 기념할 거야! 에스칼라드가 어떤 날인지 기억나?” 쟌이 물었다. “음…으응?” 쟌이 전에 설명을 해준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났다. “제네바에서 가장 중요한 날인데! 이 날이 없었으면 제네바도 없었다……. 프랑스의 사보아군대가 칠흑 같은 한밤 중에 제네바를 정복하러 왔는데 제네바 시민들이 모두 용감하게 싸워서 승리한 날이야.” “한 아주머니는 끓는 수프 냄비를 통째로 적군 머리 위에 내던졌어. 이 이야기에서 초콜릿 냄비 부수는 전통이 생겼어.” “초콜릿 냄비는 최연장자랑 최연소자가 손을 맞잡고 부숴야 돼.” 가족들이 돌아가며 열심히 설.. 더보기
학교 구경 “내 모교 구경해볼래?” 학교에 무슨 볼거리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볼거리가 참 많았다. 학생들의 연구과정을 담은 프린트물, 연구 관련 기사, 실험 모형, 공지사항과 학교생활과 관련된 알림 및 학생을 위한 행사 전단이 벽면 여기저기를 채우고 있었다. 비어있는 벽이 거의 없었다. 학습이 교실에 정체되어 있지 않고 학교 모든 공간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도서관에 가보자! 내가 쓴 논문이 아직 있을거야!” “응? 여기 고등학교라고 하지 않았어? 무슨 논문?” “음……, 그게 스위스는 학교 시스템이 달라서 뭐라고 할까… 학사와 석사 그 중간 단계쯤의 논문?” 스위스는 독특한 교육 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칸톤마다 정책이 달라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그래. 고등학교에서 자신의 '학사.. 더보기
제네바의 모든 것은 말을 한다 백만년만의 "따뜻한 겨울" 에세이 컴백. 2016년 12월 23일 쟌과 토마스, 나 셋이서 시내 구경을 나섰다. 쟌은 들떠보였다. 우리들에게 자신이 자라온 곳 구석구석 보여줄 생각에 신이 났나보다. 나도 한껏 들떴다. 쟌이 수도없이 디뎠을 제네바 거리를 걸어본다는 사실에. 고전과 현대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제네바. 나이가 몇 세기나 될까 싶은 건물들을 한참 따라가다가 기술과학대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특별한 시계를 보며 제네바 속에 탄탄히 자리 잡은 문명의 근육을 실감해본다. 시간을 문장으로 알려주는 시계로 콘크리트 건물과 잘 어울리기까지 하여 세련된 미적 감각도 돋보인다. 한편, 우아한 석조 건물 밑에 자리하고 있는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는 왠지 제네바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어딜 가나 똑같은 글로벌 체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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