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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따뜻한 겨울 (2016년 스위스, 프랑스 여행기)

초면에 이런 질문을...?! 스위스식 친구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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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저녁

 

 

 

“친구가 같이 놀자고 하는데 어때, 만나볼래?”

저녁을 다 먹어갈 때쯤 쟌과 마린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안될 거 뭐 있나 싶어 흔쾌히 승낙했다. 마린과 토마스, 쟌, 그리고 나 넷이서 집을 나섰다.  캄캄한 거리를 가로질러 한 5분 걸었을까. 지붕이 세모난 3층짜리 집이 나왔다.

계단을 오르자 한 이집트 유학생이 문을 열어줬다. 우리를 초대한 친구, 바쿰이었다. 활짝 웃으며 우리를 맞이하는 그의 뒤로 맛있는 볼로네즈 냄새가 났다. 함께 크리스마스 전전날을 보내려고 이렇게 맛있는 볼로네즈를 만들어 우리를 초대했단다. 아- 친구야,  우린 벌써 저녁을 먹고 왔단 말이야. 일찍 귀띔이라도 해주지……. 그랬으면 배를 비워서 왔을 텐데.

바쿰이 살고 있는 집은 한 미국인 가족의 집이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고향으로 떠나고 없었다. 바쿰은 이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다. 이집트에서 스위스 제네바로 유학을 오며 이 가족을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처럼 대접받고 있다고.

모르는 사람을 하숙인으로 들인 것도, 그 하숙인을 가족처럼 맞이한 것도, 그 가족 같은 하숙인에게 집을 완전 맡기고 휴가를 떠난 것도 다 내겐 낯설기만 했다. 그런데 이 가정만 그런  게 아니라 스위스, 아니 유럽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하니…….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 새롭기만 하다.

 걸려있는 사진들과 서재를 천천히 살펴봤다. 이제는 성년이 다 된 자녀들의 어린시절 사진뿐만 아니라 본인들의 부모님 결혼식 사진도 걸려 있었다. 응접실 한쪽 벽 전체와 복도에는 책이 빽빽했다. 신학서적과 주석서 전집이 많았다. 신학 교수이신가? 목사님이신가?

“아니. UNEP에서 일하셔.”

UNEP ……? 그곳이 어딘지 알지 못하는 나, 그리고 이어지는 친절한 설명.

“환경을 다루는 UN 기구야.”

UNEP. United Nations Environnement Programme. 낯설고 새로운 세상. 그런 세상을 사는 사람들. 스위스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보다 심한 이질감을 느꼈다.

의약 공부를 하고 있는 바쿰은 스위스에 온 지 3년이 됐단다. 스위스인은 대학과정까지 학비를 전혀 내지 않으며 외국인은 한 학기에 50프랑 정도를 낸다고 했다. 학비는 그리 비싸지 않지만 교육과정이 너무 달라 공부에 어려움이 있다고.

“띵동-”

바쿰에게서 스위스 생활의 이모저모를 듣는 중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친구들! 내가 왔어요!”

쟌과 마린의 오랜 친구, 토마였다. 우리는 비쥬 인사를 나눈 뒤 스위스의 전형적인 사교모임(?)을 시작했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서로에게 궁금한 점들을 묻기 시작했다. 아, 질문을 받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사실 나는 어떤 질문이 적절한지 몰라 그저 묻는 질문에 답만 했다.

토마와 바쿰은 나와 토마스에게 궁금한 게 정말 많았다. 한국과 방글라데시 (토마스의 나라)의 수도부터 해서 인구, 현시각 주요 이슈, 한국과 북한의 관계, 군대 정책 등등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물었다. 슬슬 분위기 파악이 됐다. 아, 스위스사람들은 외국인을 만나면 이런 질문부터 하는구나……. 우리나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나를 존중해주는 것 같아 좋긴 한데 상식이 짧고 나라 돌아가는 일에 컴컴한 나에겐 참으로 지나친 호기심이구나…….

질문 세례가 끝나고 게임을 시작했다. 첫 번째 게임은 오, 엑스 퀴즈. 종이에 단어를 적고 옆 사람 이마에 붙인 다음 자신의 이마에 적힌 단어를 알아맞히는 게임이었다. 오, 엑스 퀴즈만 사용할 수 있는 게 규칙. 뭐, 이 게임이야 한국에서도 해본 적이 있다.

“우리 다 알만한 주제로 해야 하니까………… 위인 어때?”

아, 그래. 위인. 오케이. 다 하나씩 쓰고 서로 이마에 붙인 걸 읽어봤다. 나이팅게일, 넬슨 만델라, 칼빈, 클레오파트라 …….  우리 지금 세계사 수업 중인 건가?

두 번째 게임 테마도 인물이었는데 이번에는 팀 게임이었다. 두 팀으로 나누고 A, B 팀을 고루 섞어 자리에 앉는다. 모두 빈 종이쪽지를 3개씩 받는다. 한 쪽지에 한 인물을 적은 다음 반 접는다. 쪽지를 섞는다. 돌아가면서 쪽지를 고르고 45초 안에 쪽지에 적힌 인물을 설명해 팀원이 맞추도록 한다.

총 3라운드로 진행되는데 2라운드에서는 인물에 대해 한 단어만 사용하여 설명할 수 있고 3라운드에서는 마임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번 게임에 등장한 인물들은 오바마, 마틴 루터, 앙리 뒤낭, 제인 오스틴, 박근혜, 칼빈, 콜럼버스…….

잠깐 있다가 갈 생각이었는데 벌써 자정을 넘겼다. 스위스 사람들은 이런 식탁 게임을 즐기며 친구들과 밤을 새운다고. 우리나라도 단체게임의 나라가 아니던가? 매년 엠티, 회식, 미팅에서 새로운 게임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지 않던가?

그런데 스타일이 좀 다르긴 하다. 우리나라 게임은 스피드가 생명이고 화끈한 벌칙이 필수다. 그 긴장감과 짜릿함에 즐거움은 고조된다. 시간도 체면도 다 잊고 호탕하게 웃고 서로의 등을 때려 패고 (?) 벌주를 들이켜다 보면 서로 간의 허물이 한 결 무너져 있다. 그렇게 가까워진다. 스위스식 단체게임은 한참 얌전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뜨거운 게임들을 소개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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