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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따뜻한 겨울 (2016년 스위스, 프랑스 여행기)

노엘 노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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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당일은 마침 주일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교회에 갈 채비를 마쳤다. 스위스 와서 처음 가보는 교회. 어떤 곳일까? 우리나라처럼 크고 높은 빌딩일까? 몇 명이나 모일까? 찬양팀은 어떨까? 목사님 설교는 어떨까? 많은 것이 궁금했다. 쟌의 가족들과 쟌을 봤을 때 그들이 속한 공동체는 웬지 포근할 것만 같다.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차가 멈춰 섰다. 도착한 것이다.

 

내리고 보니 농장 한 가운데. 동서남북으로 펼쳐져 있는 푸른 초원. 풀을 뜯고 있는 소들.

 

‘한겨울에도 이렇게 푸른 풀이 돋아날 수 있구나.’

 

바람을 따라 소의 목에 걸린 종이 덩그렁 덩그렁 투박하게 울렸다.

 

음머 –

 

풀내음, 소똥냄새, 농기계에 뭍어있는 오일 냄새. 할머니댁이 떠올랐다.

 

“교회가 어디에…?”

“여기야, 여기.”

 

쟌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헛간이었다. 육중한 트랙터들이 조용히 쉬고 있는 곳. 짚꾸러미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곳. 여기가 교회라고?

커다란 헛간 안에 또 따로 만들어진 공간이 하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아늑하게 꾸며진 실내가 나왔다. 강대상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커다란 물레바퀴가 단상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피아노와 북이 있었다. 벽면에는 세계지도와 선교사님들의 사진이 걸려있고 다른 쪽에는 책들을 진열해놓는 가판대가 있었다. 너무 새로웠다. 그리고 낯설었다. 교회가 이렇게 소박하고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우리가 들어갔을 땐 예배가 막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옆 자리에 앉으신 분께 목례를 하고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인원은 20여명 남짓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한국의 설날과도 같아. 그래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부모님댁에 가거나 휴가를 갔어. 목사님도.”

 

쟌이 소근소근 내게 귓속말을 했다.

 

“…어? 그럼 지금 앞에 서 계신 분은 누군데?”

“우리 교회 장로님이야.”

 

뭐, 장로님…? 장로님이 설교를…? 아니, 목사님이 아무리 명절이라도 그렇지 이렇게 주일날 자리를 비우셔도 되나…? 쟌과 성도님들은 이런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나는 시험든 자매님상을 하고서 상황을 지켜봤다.

풍채가 좋으시고 머리가 곱슬곱슬하신 장로님은 귀에 속속 들어오는 목소리로 설교를 하셨다. 쟌의 통역을 따라 설교를 들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사복음서는 각각의 주제와 강조점이 특징적입니다. 이때문에 몇몇 초대교부와 신학자들은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이미지와 연결시켜 해석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쓰여졌다고 보는데 예수님의 왕권을 강조하기에 사자로 비유됩니다. 마가복음은 로마인을 대상으로 기록되었고 종으로서 오신 예수님을 강조하기에 송아지로, 이방인을 위해 쓰인 누가복음은 참 신이시자 참 사람이신 예수님을 강조하기에 사람으로, 믿음의 공동체들을 위해 쓰여진 요한복음은 독수리로…… 결론적으로,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참 신이시지만 참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오신 것은 인간을 종과 같이 섬기기 위해서였고 또 자신의 죽음으로 인간의 죄값을 치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3일만에 다시 부활하신 참 신이시며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탄생을 기념하는 오늘날은 우리에게 부활 소망에 대한 리마인드이며 축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장로님이 혹시 신학교 교수님이셔?”

“아니, 수학 교수님이셔.”

“…응?”

 

교수님은 맞는데 수학 교수님. 설교를 하시지만 장로님. 이제껏 신학교를 졸업하신 분 외에 강단에 오르셔서 설교를 하시는 걸 본 적이 없는 나는 그저 어리벙벙했다.

 

“너무 좋잖아.”

 

 

예배가 다 끝나고 성도분들과 인사를 했다. 모두들 쟌을 보시더니 너무 반가워하시며 이런저런 소식을 물어보셨다. 흡사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친척들 같았다. 마린은 내 곁에 서서 이 분이 누구신지, 저 분이 누구신지 일일이 소개를 해줬다. 교인들과 얘기를 주고 받는 중에도 잊지 않고 나를 그분들께 소개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마린 덕분에 일종의 소속감이 형성되는 것 같았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으면 지루했을 법한 시간. 유럽의 관계예절은 이런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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