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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따뜻한 겨울 (2016년 스위스, 프랑스 여행기)

봉쥬르, 구텐탁, 본조르노,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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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서너 번 잠에서 깼다. 한참을 뒤척이다 다시 잠들기를 반복, 그러다 더 이상 다시 잠을 청할 수 없는 멀뚱한 상태가 되었을 땐 아침 7시 반이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3시 40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잘 있다고. 제네바에 온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할 얘기가 너무 많았다.

30분이 좀 지났을까. 인터넷 신호가 약해져서 통화를 더 오래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서 일지를 써야겠다 싶었다. 글을 잘 쓰기에는 방이 너무 어둡다. 창문을 열어보지만 어슴푸레하기는 마찬가지. 느지막하게 시작되는 제네바의 아침. 그리고 가족들의 겨울. 8시 반쯤 되자 여기저기 방문 열리는 소리, 삐그덕거리는 마루 소리, 샤워기 소리 등등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분주한 밖은 무시한 채 따뜻한 이불속에 완전히 파묻혀서 일기를 쓰고 있는 나. 그러다 들리는 노크 소리. 똑똑똑-. 쟌이었다.

“잘 잤어? 아침 먹으러 와-.”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쟌에게서 커피 향이 났다. 좋은 냄새.

이미 식사를 마친 가족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30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알찬 시간이었다니) 어머니만 부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따뜻하게 맞이해주셨다. 나중에 첫째 언니 그레이스와 어머니는 프랑스에 장을 보러 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해를 못하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내게 쟌이 설명을 해준다.

“여기서 프랑스 지역까지는 차로 10분 정도밖에 안 돼. 국경이 엄청 가깝지? 프랑스 지역 물가가 워낙 싸서 꼭 필요할 땐 이렇게 장을 보기도 해.”

내 발로 국경을 직접 넘어보기 전까지는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을 듯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나와 쟌, 토마스 셋이서 어머니가 구우신 빵, 직접 내리신 커피를 먹었다. 우유도 마셨다. 굉장히 맛있었다. 스위스의 우유는 ‘스위스 출신 소꺼’라고 했다. 우유에 함유된 지방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고 했다. 스위스에서는 주로 3종류로 나눈다고 했다. 지방이 3.5%, 2.5%, 1.5% 함유된 것. 우리나라에도 저지방 우유가 있긴 한데…… 이곳 우유의 세계는 정말 구체적이구나. 그런데 소가 무엇을 먹고 큰지는 몰라도 맛이 정말, 비교가 안된다. 비린내가 없고 고소하면서 향긋한, 지방 2.5% 비율의 보통 우유. 이렇게 맛있는 우유는 난생처음이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우유갑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어로 표기된 제품명과 설명이었다. 스위스의 제품들은 대부분 이렇게 세 가지 언어로 표시한다고 했다. 스위스의 국어를 반영한 것이었다. 로망슈어까지 포함해서 스위스의 공식 언어는 총 네 가지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 비율이 62%, 프랑스어 23%, 이탈리아어 8%, 로망슈어 0.5% 정도 된다고 한다. 면적이 우리나라의 반 조금 못 되는 작은 나라에서 네 가지 언어로 소통하는 모습이 상상이 잘 안 된다.

“그럼 모든 국민이 네 가지 언어를 다 할 줄 알아?”

“그건 아니고. 독일어 사용 비율이 높기 때문에 학교에서 독일어를 제2국어로 가르쳐. 그런데 문법이랑 읽기 위주로 배우기 때문에 내 말하기 실력은 형편없었어. 군대를 하필이면 독일어권으로 갔는데 쌩고생 했지 뭐.”

듣고 보니 꼭 우리나라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쳐주는 식이다. 하하.

“정부 차원에서 각 지역 언어 배우기를 독려하는데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날 일 없으면 뭐… 한 언어만 구사해도 행복하게 사는 데 지장 없어.”

그래도 요즘은 시장이 글로벌화되어있기에 영어를 배워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특히나 제네바나 취리히 같은 대도시에는 평생 영어만 쓰다가 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영어가 공용어인 직장이 많았다.

“정치인이나 대통령같이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를 한다고 봐야 돼. 대통령 같은 경우 회의할 때 자기 언어로 발언하고 상대방 언어를 알아들어야 돼.”

스위스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각기 다른 언어와 함께 스며들어있는 문화라는 색깔은 얼마나 다양할까. 그 다양한 것들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이곳의 예술, 철학, 그리고 문학은 얼마나 부요할까. 그리고 스위스 사람들.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들의 사고방식을 한 번 캐내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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