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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따뜻한 겨울 (2016년 스위스, 프랑스 여행기)

마중: 제네바에 도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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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 도착하니 아침 10시 40분. 맑고 차가운 공기가 폐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와- 공기가 참 맛있어."

공항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생각보다 아담하고 오래된 느낌이 나는 공항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사람들. 낯설게 느껴졌다.

어찌된 일인지 쟌의 가족들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마중을 나왔을텐데…!"

 쟌은 불안한 마음으로 입국장을 세 번 돌았지만 가족들을 만날 수 없었다. 유심도 없어서 가족들에게 연락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우선은 커피숍에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어차피 토마스를 위해 공항에 3시간은 더 있어야했다. 방글라데시 친구인 토마스는 쉥겐 비자 발급 때부터 고생이었다. 스위스 대사관에 갈 때마다 '은행 잔고 증명서를 떼와라, 보험가입 서류를 떼와라' 등등 준비해야 할 서류만 늘고 비자 발급은 늦춰졌다. 비자 발급이 밑도 끝도 없이 연기되니 결국 쟌의 어머니가 대사관으로 토마스에 대한 초청장을 보냈다. 그 뒤로 순식간에 이뤄진 비자 발급. 3개월 무비자입국 가능한 대한민국의 초록색 여권이 참 막강하구나 느끼면서도 내 친구가 겪는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던지. 믿음직한 그의 성품은 심사가 안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어렵사리 비자는 받았으나 이제는 나와 쟌이 타는 비행기 티켓이 너무 비싸졌다는 것. 하는 수 없이 토마스는 인천-베이징-취리히-제네바를 경유하는 티켓을 끊었다. 그런데 여행사에서 미들네임 스펠링 하나를 빠뜨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토마스는 베이징에서 서울로 돌아올 뻔 했다. 베이징 출입국 사무소에서 그를 몇 시간씩 잡아두다가 비행기가 뜨기 직전에 가까스로 탑승을 했단다. 그는 이제 취리히에서 제네바로 넘어오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터다.

제네바에서 가장 먼저 맛 본 것은 커피와 코코아. 무거운 바디감에 코 끝에 긴 여운을 남기는 커피. 그런데 코코아는 맹 우유같았다.

"엥, 코코아는 밍밍해."

그러나 다 마실 때쯤 바닥에 침전된 초코를 보고서 웃고 말았다. 쟌이랑 얘기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밍밍한 코코아를 맛보게 된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30분이 지났을까.

"내가 한 번 둘러보고 올게!"

나는 이미 세 바퀴를 돌고 온 쟌에게 혹시 가족들이 입국장에 기다리고 있는지 보고 오겠다고 했다. 캐리어를 다 끌고 갈 수 없으니 쟌더러 커피숍에서 있으라고 했다. 내가 쟌의 가족들을 만난 것은 화상통화가 전부. 그나마 쟌의 여동생 마린이 지난 여름 한국에 다녀가서 안면이 있기는 했다. 그렇긴 해도... 사실 쟌이나 나나 아직 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공항 한 바퀴 둘러보는거지, 뭐.

 

 

 

기대감 반 긴장 반. 출국장에서 마중을 나온 사람들을 훑어보며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한 가족이 목을 빼고 한 사람 한 사람 살피고 있다. 쟌의 가족이었다!

'쟌을 불러야 하나... 아님 가족들을 카페로 데려가야 하나...?'

그들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적절한 첫만남이 무엇인지를 두고 혼자 수많은 생각들에 사로 잡혔다. 그러는 사이 나의 다리는 멈추지 않고 그들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손을 뻗어 닿을 거리에 있었다.

'스위스에 왔으니까 볼맞춤 인사를 해야겠지? 한 번도 안해봤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거지...? 에이, 용감하게 한 번 해보자. 그냥 볼만 내밀면 되는 거 아니야? 봉주르라고 하면서...'

어느새 나는 그들 바로 뒤에 서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래도 안면이 있는 마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어...!"

마린의 짧은 외침과 함께 나머지 가족들이 일제히 돌아봤다. 잠시 정지화면. 우리 모두 일순간 할 말도 잃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Hello!"

엇, 이게 아닌데...... 봉주르라고 하려고 했는데....

봉주르 아닌 헬로. 볼맞춤이 아닌 눈인사. 몸이 잔뜩 긴장하여 대나무처럼 꼿꼿해졌다. 가족들도 어떻게 인사할지 몰라 주춤주춤하다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마린이 내게 보랗게 물이 든 초롱꽃다발을 내밀었다.

"제네바에 온 걸 환영해! 지난 번에 한국에 갔을 때 꽃다발을 준비해준 게 기억나서 우리도 꽃다발을 준비했어."

물방울처럼 동글동글한 초롱꽃이 수줍게 웃고 있는 소녀처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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