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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따뜻한 겨울 (2016년 스위스, 프랑스 여행기)

대화하다: 스위스 가족의 대화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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쟌의 가족은 대화가 많고 유머가 넘치는 가족이었다. 이쪽에서 묻고 저쪽에서 대답하며 공항 맥도날드에서 한참을 보냈다. 쟌의 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두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는데 프랑스어로 대화하면서도 영어로 계속 물어봐주고 중간중간 대화 요약을 해서 알려줬다. 참 배려심 넘치는 가족덕분에 나는 그들이 무엇에 관한 대화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의 양과 내용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끊임없이 대화하며 웃었다. 쟌을 오랜만에 본 가족들은 그동안 못 풀어놓은 대화 보따리를 활짝 열어젖힌 듯 했다. 그러나 근 두 달 같이 지내본 결과 이들은 정말 대화가 많다. 식탁에 둘러 앉기만 하면 기본 한 시간은 얘기하는데, 대화가 메인메뉴이고 밥이 반찬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주제는 한국과 제네바의 날씨, 인구, 언어의 차이부터 시작해서 문화, 철학, 역사, 사회 등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공유하고 거기에 대한 견해를 덧붙이면서 대화의 폭과 깊이가 얼마나 깊어지던지... 나는 그저 놀란 눈을 너무 크게 뜨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조용히 앉아있었다.

쟌의 가족이 내게 던진 첫질문, 일종의 아이스브레이크용 질문도 충격적이었다. "비행이 몇 시간 걸렸니?"가 아니라 "한국에서 제네바까지 몇 키로미터 떨어져있니?"라니...! "한국 날씨는 어떻니?"가 아니라 "한국은 지금 기온이 몇 도 정도 되니?"라니...! 이 외에도 나를 당황하게 한 질문 리스트는 이러하다.

한국 땅의 면적

한국 인구

서울의 인구

서울과 경기도의 차이 (어디까지가 수도권인지)

서울에서 우리 집까지 거리 (몇 키로미터)

서울에서 부모님댁까지 거리

북한과의 관계

북한의 동향

사회시간에 배운 기억은 나는데... 배운 내용은 기억나질 않네요...

답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식은땀이 나려는데 고맙게도 쟌이 모든 질문에 답을 해줬다. 쟌이 한국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그날 밤, 드디어 홀로 방에 남겨졌을 때 "위키백과: 대한민국"을 검색했다는 사실...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예상 밖의 질문에 진땀을 뺐지만.

그러나 쟌을 가족들 앞에서 쩔쩔맨 것이 참 다행이었다. 쟌을 친구들이든 친척들이든 만나는 스위스사람들마다 다 사회수업 타입의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복습이 되서 갈수록 한국에 대한 질문을 보다 자연스럽게, 자신감있게 할 수 있었다.

스위스 사람들과 만날 일이 있다면 꼭 한국에 대한 기본정보를 숙지해둬라. 백이면 백, 그들은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웠던 것들, 시험지 제출과 함께 까먹었을 내용들을 물어올 것이다.

스위스 사람들의 관심사가 참 흥미롭다. 그들의 구체적인 질문, 수에 대한 관심은 추상적이고 느낌 중심적인 나의 사고를 다듬는 듯 하다.

시험에 쫓겨 공부하고 다 잊어버린 상식들을 주워 담아 가지런히 저장해놓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결과지향적인 공부 끝에 내게 남은 건 점수 뿐. 지금껏 나는 사회가 제시한 수많은 빈칸들을 채우기 위해 점수에 몰두해오지 않았던가하는 성찰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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