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점점 글쓰는 횟수가 낮아진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내 우선순위가 바꼈음을, 다른 중요한 일들이 많아졌음을, 하루하루가 더 즐겁고 유일해졌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정말 할 일이 너무 없어서 스스로 일을 만들지 않으면 절망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나의 답답한 심정과는 달리 유럽에서의 일상은 정말 천천히 갔다. 일이 꼭 있어야 삶에 의미가 생기는 건 아니지 않냐고,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음미라하는 신랑의 말이 이해는 되도 위로로서는 빵점이었다. (지금은 그래. 그 말을 잘 알겠고 가끔 그때가 그립다.)
블로그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베이비시팅이 내 주업인 그 때 블로그라도 해야 자존심이 덜 구겨질 것 같았다. 어떻게든 액티브함을 유지하고 싶었고 나를 개발하고 싶었고 수입의 길을 열고 싶었다. 수입은 곧 내 역량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수입형 블로그 공부도 꽤 했다. 얼마 안 가 거품이 많이 낀 꿈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2년, 광야에서 시간을 보낸 것만 같다.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하고 커리어를 쌓고 사회에서 내 존재가치를 빛내고자 달렸던 나는 '이름없음', '난 아무 것도 아님'이 뭔지 경험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듯 했는데 오히려 그 바닥에 내려가보니 진짜 내가 보였다. 그렇게 나를 만났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바닥에 내려가보면 나를 증명해야할 이유, 바득바득 싸워야할 이유, 잘 보여야할 이유, 이런 게 하나도 없다. 처음엔 그게 그렇게 견디기 힘들다. 그러다 그동안 억지로 혹은 열심히 포장해온 겉모습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나로서 사는 연습을 시작한다.
그곳에 가 보면 비로소 배우게 되는 듯 하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 내가 할 수 있는 것 (잘하는 것, 못하는 것 모두),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게 주어진 소명. 그곳에 가 보면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곳에서는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어차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있는 내 모습 그대로가 가장 좋다. 어차피 보여줄 사람이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보다 더 강한 인내와 용기가 내 속에 자리잡은 것을 느낀다. 심해에서도 날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을 내가 만났고 믿기 때문이다.
내 얼굴이 평안해보인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래요? 2년 전에 날 봤으면 다르게 얘기했을텐데요.'
속으로 생각하고는 미소를 지어보인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내 얼굴에 평안이 깃들어 있기를.
강 / 소망의 바다
늦은 겨울 산머리 작은 바위틈
작은 풀조차 휘기 힘겨운
어린 줄기로 떠난 넌
언제나 바다가 그리워
하늘과 맞닿은 푸르름
그 긴 수평선 너머로
네 작은 꿈을 띄웠지
여린 바람 가는 비
때론 폭풍우 같은 흔들림에도
네 깊은 곳 거기
심해 같은 평안함은
여전히 수평선 너머 널 꿈꾸게 해
기억해 줄 수 있겠니
또 다른 곳에도
너와 같은 꿈꾸며
흘러가고 있을 난
여린 바람 가는 비
때론 폭풍우 같은 흔들림에도
하늘이 그리워 떠난
한줄기의 작은 푸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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