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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프스코댁 다이어리

가을휴가, 아라쉬 라 프라스에서 "눈이 시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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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방학 (Les Vacances d'Autumne)

프랑스의 학교는 9월에 첫 학기를 시작, 10월 마지막 주-11월 첫 주에 걸쳐 가을방학을 맞이한다. 전통적으로 11월 1일에 모든 성인 대축일(Toussaint투쌍)이 있어서 이 날을 끼고 앞 주, 뒷주에 방학을 가진다. 그래서 바캉스 도똥(les vacances d'autumn 가을방학)이라고도 하고 바캉스 드 투쌍(les vacances de Toussaint)이라고도 한다.

이번 휴가는 꼭 가자

프랑스 근로자는 연간 최소 5주의 유급 휴가를 가질 수 있다. 보통 여름에 긴 휴가를 갖고 성탄절 주간에 1, 2주 정도 갖는다. (성탄절은 이곳에서 설날정도로 보면 되겠다.)
우리 부부는 여름 휴가를 전혀 갖지 못했다. 그래서 벼르고 있다가 이번에 휴가를 가졌다. 할 일이 자꾸 쌓여서 마음껏 쉬지는 못하고 3일 휴가를 냈다.
"우리도 좀 쉬어야 돼! 우린 슈퍼맨이 아니야!"
프랑스는 노동 시간도 법적으로 정해져 있고 복지가 잘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업종에 따라 또 다르다는 것을 경험한다. 특히 우리네 일은... 쉼, 여가 시간, 가족과의 시간은 나라 상관없이 본인이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 같다. 국가에 따라 그게 그나마 쉬울 수 있고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아라쉬 라 프라스 Arâches-la-Frasse

휴가 한 달 전부터 신랑에게 엄포를 놓았다. 이번 바캉스는 무조건 떠나야 된다고. 3일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니까 더더욱 휴가답게 보내야 한다고. 그렇게 엄포를 놓고 에어비엔비를 뒤졌다. 내가 생각한 조건은 이랬다.

너무 멀지 않은 곳 (1시간 이내 거리)
저렴한 곳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곳
조용한 곳

그렇게 찾으니까 아라쉬 라 프라스가 나왔다. 스키 마을 샤모니Chamonix와 클루즈 Cluses 사이에 있는 곳이었다. 2박 3일에 70유로. 한 번도 가 본 적 없고 들어 본 적 없지만 숙소 여건이나 위치가 마음에 들어서 바로 예약했다.

오빠, 타!

휴가 당일. 원래 수요일 아침부터 휴가 스케줄인데 신랑이 참여해야할 포럼이 생겨서 반나절을 휭 날려버렸다. 우리는 3시 반이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오빠, 타!"
프랑스 면허증을 받은 지 대략 두 달이 지났는데 그동안 운전하는 맛에 들려버렸다. 우리 차는 여느 다른 프랑스 차처럼 수동기어다. 내가 운전하면 차가 덜컹덜컹할 때가 잦다.
"그래도 내가 운전 할거야! 얼른 타!"
신랑은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나는 방방 뛰는 마음을 안고 출발했다.

달리는 내내 경치가 장난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지역은 몽블랑과 쥬라 산맥을 볼 수 있는 지역이다. 험난한 바위 산맥이 늠름하게 어깨를 펼치고 있다. 자동차 전용도로는 이 산맥들을 따라 나있다. 늘 장엄한 광경에 '와-'를 수십 번 외친다. 그런데 단풍으로 물든 이 광경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가을을 오늘 처음 보는구나.'
작년 가을에는 한국에 있었고 제작년 가을에는 제네바에 있어서 이 골짜기를 지날 일이 없었다. 우리 가족이나 친구들이 오면 무조건 지나야 할 드라이브 코스. 그렇게 리스트가 또 하나 늘었다.


우리의 숙소가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더 아찔해졌다. 바위 산맥을 따라 굽이굽이 난 길을 타고 오르는데 세상에. 꼭대기는 눈으로 덮여있지 않은가! 산의 허리께까지는 단풍으로 물들어있고 그 위로는 하얀 눈으로 덮인 풍경이라니. 난생처음 보는 아름다움에 눈이 시렸다.

클루즈에서 장을 봤다. 라끌렛용 치즈, 곁들여먹을 샤퀴테리, 오이피클, 와인, 지역 요구르트, 애플주스 등등. 숙소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슈퍼마켓이 있긴 하지만 클루즈라는 도시도 알아볼 겸.

쉼, 쉼, 쉼

이번 휴가는 정말 짧았지만 알찼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었다. 우리의 일정은 대략 이랬다.

수요일
<저녁>
라끌렛
영화시청 (DVD를 챙겨갔다)
취침

목요일
<아침>
식사 - 신랑의 특급 계란 프라이와 로블로숑 치즈, 사과주스, 이탈리안 포트로 내린 커피
큐티 (켈러 부부가 쓴 "결혼의 의미"로 묵상)
근처 불랑제리 (빵집)에서 커피를 곁들인 크로와상 먹으며 자유시간(이메일, 문자, 일 조금...) / 크로와상 맛있어서 하나 더 시키기... 그렇게 아침 식사 세 번째 하기...

<점심>
샌드위치
근처에 있는 산 트레킹 - 20센티 넘게 쌓인 눈, 전혀 준비가 안된 운동화와 청바지 복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 위한 숨 가쁜 발걸음 / 내려올 땐 "다음번엔 썰매를 꼭 챙겨 오자" 백번 말하며 경사 냅다 달리기 + 미끄러지기
숙소에 돌아와 게임 - 야찌랑 카드게임했음

<저녁>
라끌렛 >_< (한 번으로는 부족해)
영화 시청
개인 쉬는 시간 - 나는 그림, 신랑은 독서
취침

금요일
아침 - 여전히 스위트 한 신랑의 특급 계란 프라이와 로블로숑 치즈, 사과주스, 이탈리안 포트로 내린 커피
큐티 - 어제처럼
개인 쉬는 시간 - 신랑은 침대에서 독서, 나는 카메라 들고 산책
체크아웃
불랑제리에서 바게트 사기
클루즈 둘러보기

<점심>
케밥
쇼핑
집으로

숙소 근처에 사는 야옹이. 사진 찍을 줄 아는 요염한 녀석. 사진 찍어줬더니 나를 따라 숙소에 들어오려고 했다...
클루즈



이번 휴가에는 각자가 쉬는 스타일을 많이 반영했다. 신랑은 영화와 독서 같이 실내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쉼을 얻는다. 나는 밖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등 몸을 움직이거나 창작 활동을 통해 쉼을 얻는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쉼을 얻기 때문에 그동안 불편할 때가 많았다. 이번 휴가에서는 서로의 방식을 따라 주고 또 한 타임은 개인의 시간을 보냄으로써 서로의 리듬과 호흡을 잘 맞췄던 것 같다.
"우리 쿵작이 더 잘 맞아가는 것 같은데?"

다음 휴가는 최소 4일을 잡기로 했다. 첫째 날과 마지막 날은 이동 시간이 반, 둘째 날은 여기저기 구경하고 체험하느라 다 가버린다. 셋째 날이 있어야 신랑은 하루 종일 편안한 침대에 누워 책을 진득하게 읽을 수 있고 나는 봤던 풍경을 그려보거나 느긋하게 산책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다음 휴가는 어디로 갈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되풀이했던 말.
다음 휴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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