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매장은 늘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에마우스는 중고매장 중에서도 가장 싸고 활발한 곳일테다. 나는 이곳에 가면 카운터 옆에 있는 사무용품 코너부터 살핀다. 쓸만한 미술재료를 건지기 위해서다.
오늘은 싸인펜을 건져볼 생각으로 큰 플라스틱통에 담겨있는 싸인펜 더미를 살피고 있었다. 드문드문 까렌다쉬와 스타빌로 싸인펜이 보였다. 빈종이에 잉크가 나오는지 테스트하며 열심히 고르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희안한 프랑스억양으로 "카렌다쉬 풴을 찾고 이써용?"하고 물었다.
"네. 카렌다쉬가 죠킨 죠터라구요."
나도 썩 좋지 않은 발음으로 띄엄띄엄 답을 했다.
"혹쉬 아티스트?"
"아, 아니에요. 미술을 많이 좋아해요."
아저씨는 잠시 기다려보라더니 카운터 안쪽에서 싸인펜이 가득 담긴 지퍼백을 가지고 왔다.
"내가 까렌다쉬 펜만 따로 모아놨는데 마음에 드는 게 있나 한 번 봐요."
아저씨는 고향이 미국이고 이름은 에릭이라고 했다. '나는 젊은 사람들 도와주는게 좋다'며 어디서 자꾸 쓸만한 미술도구를 가져와 보여주셨다. 아저씨가 일부러 모아놓은 까렌다쉬펜을 혼자 다 챙기는 건 이기적인 것 같아 필요한 건만 고르려니까 하고싶으면 다 챙기라고 했다.
"솔직히 어디가서 또 이렇게 싸게 사겠어요?"
그렇게 난 펜 한 봉지 전체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아저씨가 핸디한 스케치북도 찾아주셔서 그것도 담았다. 쓰던 스케치북 다 써가던 참이었는데!
오늘따라 예쁜 엽서도 많아서 마음껏 담았다. 색지도 많아서 막 담았다. 그러고 계산하는데 양심적으로 생각해봐도 10프랑은 더 줘야한다. 그런데겨우...2프랑?
"자주 오면 건질 게 많아요. 중고매장이라는 곳이 물건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곳이니까."
신랑은 종이가방에 책을 잔뜩 담아왔는데 찢어질까봐 튼튼한 플라스틱가방으로 바꿔주셨다. 이렇게 친절한 에릭 아저씨는 신랑 친구의 친구 아버지라는 것도 대화 중에 알게 됐다.
이처럼 중고매장은 늘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소박한 내 그림에 따스한 손길,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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