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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프스코댁 다이어리

한식 본능이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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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동안 한국에 가지 않았다. 그래도 잘 살았다. 한국 음식을 딱히 찾지도 않고, 마트에서 보이는 대로 식재료를 구해서 잘 해먹었다. 파스타도 잘 먹었고, 치즈도 곧 잘 먹었다. 르방으로 효모빵 만드는 법도 배웠고 피자도 반죽부터 조리한다. 샐러드를 먹어야 끼니를 제대로 떼운 것 같고, 신라면을 먹을 때면 스프가 너무 매워 반만 넣을 정도로 내 입맛은 프랑스인이 다 되었다. 그래도 푹 끓인 김치찌개가 먹고 싶은 순간이 오곤 했다. 고사리와 토란대를 넣어 팔팔 끓인 육개장에 갖 지은 흰쌀밥을 말아먹고 싶은 그런 순간이.
 
그동안 잘 지냈지만 삼 년째 되니 집에 너무너무너무 가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8월에 한국에 갔다왔다. 첫 주는 부모님댁에서 지냈는데 엄마가 해주시는 집밥으로 몸보신을 제대로 했다. 그렇게 내 한국입맛이 확 돌아왔다.

 

여행을 끝내고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내 입맛은 여전히 한국밥상에 전원이 켜져 있었다. 전보다 더 강렬한 욕구와 갈망으로 한식을 찾았다. 프랑스에서 사는 동안 한식을 가끔 해먹었다. 빨리 적응하고 싶기도 했고 먹는 게 그렇게 중요하나- 그냥 있는 재료로 영양소 균형있게 챙겨먹으면 되지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무조건 한식.

냉장고에 쟁여놓는 걸 좋아하지 않고 입도 짧아서 그날 바로바로 해 먹는 걸 좋아해서... 그래서 한식을 잘 안 해 먹어요... 한식을 해도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안나고요... 같은 식재료라도 물과 공기가 달라서 그런지...
 
그렇게 말하곤 했던 나. 
 
한식본능이 깨어난 후로는 망설임 없이 고춧가루나 된장, 간장, 소금 등등 간을 팍팍 했다. 특히 마늘을 아낌없이 넣었다. 그렇게 하니까 한국에서 먹던 맛이 나더라. 식재료의 문제라기보단 내 입맛의 문제였던 것 같다. 그간 한국의 맛을 살짝 잊었던 거지. 물론 아직도 냉장고에 쟁여놓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두 끼 정도 먹을 정도로 하니까 금방 먹어 없어지고 신선도도 유지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식을 하니 설거지 거리가 너무 많이 나온다. 우리집 설거지 담당은 우리 신랑이다. 신랑이 자신의 근무조건을 다시 확인해 봐야 된다니, 사퇴한다느니, 그런다. 
 

일주일 내내 한식을 해 먹다가 오븐에 닭다리를 구웠다. 닭요리는 우리 둘 다 오븐에 구운 걸 좋아해서. 이상하게도 입맛이 방향을 잃는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한식을 해 먹다가 이젠 뭘 해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양식과 한식은 함께할 수 없기에. 둘이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린다. 열정을 다 썼나 싶기도 하고. 갑자기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아니, 그냥 밥이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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