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이어리/프스코댁 다이어리

참 답답한 프랑스 행정에 길을 잃었다.

반응형

비자를 갱신해야 할 때마다 나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받는다.
내가 여기서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의 일정과 계획은 내 삶이 이 나라와 깊은 연관이 생겼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나는 한낯 외국인일 뿐이다.


한 나라의 시스템은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역사적 맥락에서 구축된 것이기 때문에 불평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삶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불안감까지 불러일으키는 효율성과 유연함에 대해 큰 의문을 품는다.


매번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특히 올해는 무력감을 느낀다. 비자 갱신 시스템을 모두 온라인 절차로 바꿨기 때문이다.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이 곳에서 이런 온라인 시스템은 효율성을 높이는게 아니라 혼란만 불러올 것이라 예상하긴 했었지만... 내 비자는 3월 초에 만료가 되기에 나는 작년 11월에 비자 갱신을 위해 웹사이트에 로그인 했었다. 그러나 아직 만료일까지 시간이 남았으므로 연장 신청을 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 12월이 되자 연장신청이 가능하다는 메일이 내게로 발송됐다. 그래서 사이트에 들어가서 절차를 밟았다. 12월 7일. 그로부터 2개월 반이 지났다. 일주일 지나면 내 비자는 만료된다.  웹사이트에는 여전히 내 서류들이 잘 올라갔다는 표시만 있을 뿐, 전혀 심사가 되지 않고 있다. 나는 불안함에 잠을 설쳤다. 남편도 인터넷을 뒤지며 전화번호를 찾아댔다. 그렇다. 프리팩처에 연락할 수 있는 번호가 있긴 하지만 이 번호로 연락하면 자동응답기가 뺑뺑이를 돌리는데 모두 웹사이트에서 알 수 있는 내용들만 줄줄이 내뱉기 때문이다. 직원과의 통화 옵션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남편이 정보를 정말 샅샅이 뒤져서 전화번호를 어째 찾아냈다. 지금 차분히 상황을 설명중이다. 예전에 이런 일들이 있어서 통화할 때마다 너무 답답해서 언성을 높였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충분히 배웠다. 저 차분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따지고 있는 내용을 듣고 있자니 남편도 참 많이 훈련되었구나 생각이 든다. 내 일을 자신의 것처럼 늘 나서주는 이가 있어서 다행이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명성에 감춰진 불편함. 누가 시스템을 관리하고 개발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새로운 방편을 적용할 때마다 시스템은 더 나아지지 않고 외국인들의 삶을 불편하고 복잡하게 만든다. 그들이 말하는 개선은 공직에 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화 응대를 할 필요가 없어졌고, 서류를 대면으로 처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체류허가를 받아야만 이곳에 떳떳이 머물 수 있는 나같은 외국인은 어디 가서 하소연하거나 내 권리를 싸우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뿐이다. 

 

한편으론, 프랑스의 행정이 이정도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나와 신랑은 외국생활을 앞으로 계속 하게 될텐데 프랑스에서의 이 말도 안되는 행정은 나를 훈련시키는 첫 걸음이라 생각해본다. 프랑스에 대한 실망감은 그들의 명성만큼 살기가 편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긴 하지만. 

반응형

'다이어리 > 프스코댁 다이어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식 본능이 깨어나다  (2) 2023.09.26
상처받을 준비  (0) 2022.07.03
아무것도 아닌 시간  (2) 2022.04.30
안녕 2022년!  (0) 2022.01.04
가을휴가, 아라쉬 라 프라스에서 "눈이 시린 풍경"  (0) 202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