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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프스코댁 다이어리

한국편 스페셜] 여명 - 할머니 할아버지의 첫 만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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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거실에 건고추 더미가 하나, 둘, 셋...

"바스락, 탁! 바스락, 탁!"

잘 마른 고추를 집어 꼭지를 땄다. 커다란 포대 대여섯 개가 우리 집 거실에 줄줄이 서 있다. 오늘 얼만큼 작업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주문량에 맞추려면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한다.

할머니는 매일 부지런히 출근을 하신다. 아침먹고 내려오시고 또 점심먹고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 일을 하신다. 부모님이 할머니 밭일을 함께 하고 계신 것도 있지만 할머니 당신이 집에 가만히 누워 있을 체질이 못되신다. 뭐라도 해야하는 당신의 부지런함은 가끔 부담스러울 정도다. (ㅋㅋㅋ)

그러나 할머니가 계신 덕분에 오늘 작업은 굉장히 알찼다. 할머니가 옛날 얘기를 해주셨기 때문이다.

"할머니, 살아오신 얘기 해주세요! 할아버지랑 처음에 어떻게 만나셨어요?"

이야기가 고픈 나는 한 순간도 놓칠새라 인터뷰를 시작했다.

"할배를 어떻게 만났느냐고? 선으로 만났지. 그 때 우리 외할머니가 중매쟁이 얘기를 듣고 할아버지를 보러 왔지. 근데 느그 할배가 그 소리를 듣고 산으로 도망갔더래!"

시작부터 평범치 않은 두 분의 사랑이야기.

"아니, 그럼 신랑 얼굴도 못보고 결혼하신 거에요?"

"그래. 우리 외할머니가 그 말씀을 하셨지. '내가 점심 한 상에 손녀를 팔아먹었다'고!"

도망간 신랑 후보는 못 만났지만 집안 어른들과 식사를 하며 혼인을 의논한 것이다. 그때 할머니 나이가 꽃다운 18살.

우리 할아버지는 그 당시 상당한 지주의 아들이었다. 평수는 잘 모르겠지만 매년 쌀가마니를 창고에 가득 쌓아두는 농사꾼이었다. 언덕에 지어놓은 집에서 저 멀리 내다보면 눈길 닿는 곳마다 할아버지네 논이었다고 하니. 상당한 부자였다. 할머니도 당시 비단 장사를 하던 집안의 맏이로 상당한 재력가에서 태어나셨다.

슬프게도 두 가문이 이어지고 얼마 안되어 양가 모두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만다.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시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이따금 잠기게 했던 기억들. 그 기억을 따라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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