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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프스코댁 다이어리

한국편 스페셜] 여명 - 자가격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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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자가격리가 끝났다.

보건소에서 문자로 코로나 검사 결과를 알려줬다.

다만 나는 아침 9시에 도착한 그 문자를 못보고 오후 4시가 다 되도록 하염없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늦잠을 자느라고 몰랐던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문자온 걸 몰랐을까...?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었다. 결과를 보고 너무 기뻐서 펄쩍 뛰며 달려나갔다.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들어가니 부모님이 거실에서 고추 꼭다리를 따고 계셨다. 바삐 움직이던 손을 잠시 내려놓으시곤 나를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결과 나왔나?"

나는 묻는 말에 포옹으로 대신 답을 해드렸다. 엄마도 아빠도 나를 꼬옥 안아주셨다.

 

"할아버지한테도 갔다올게요!"

슬리퍼를 대충 신고 나왔다. 할아버지댁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촐랑촐랑 신나있었다.

역시나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저 끝났어요~!'하고 외쳤다. 

"다 끝났어?"

"네! 저는 바이러스 없다고 판정까지 받은 몸이에요~"

그러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안아드렸다. 

할아버지는 많이 여위셔서 뼈가 다 만져졌다. 얼굴이 반쪽 됐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내가 소파에 앉자마자 할아버지께 호통(?)을 치기 시작하셨다. 내용인 즉슨, 할아버지께서 밤낮을 거꾸로 사신다는 거였다.

"낮에 테레비 보고 하지 밤에 그렇게 테레비 보고 뭐 먹고! 낮에는 하루 종일 누워있고! 참말로..."

그리고 또 한 마디 하셨다.

"느그 어매가 고생 많이 한다. 할아버지 입맛대로 밥 한다고. 밥도 요래요래 쪼금씩 먹으면서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느그 어매가 밭일하고 밥하고... 할아버지가 말만 하면 그거 해다 오고..."

아. 할머니께서 나에게 할아버지의 근황을 전해주고 싶어하시는구나. 어쩌면 하소연도 하고 싶으신거구나. 물론 우리 할머니만의 거친 갬성으로다가. 느끼기에 할머니도 간병인 노릇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신 것 같았다. 아프면 당사자만 힘든게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도 힘들다더니.

 

고구마줄기를 다듬으시던 할머니 옆에 앉아 거들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출국일이 언제인지, 추석을 쇠고 가는지, 프랑스에도 추석이 있는지, 코로나 상황은 어떤지 등등을 물으셨다.

 

"할아버지,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다...... 다리가 좀 아프네. 요래 앉아서는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괜찮은데 걸음을 못 걸어. 요새 어깨도 아프고."

그러고보니 할아버지께서 일자 지팡이로 어깨를 두드리고 계셨다.

"어깨 마사지하는 거 없어요? 그 왜 있잖아요, 갈고리처럼 생긴 거."

"없어... 나가면 하나 사오거라."

"아, 그래요? 우리 집에 있던데 가서 들고올게요!"

아니, 이 혁신적인 아이템이 할아버지댁에 없다니! 당연하게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바로 내려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린 뒤 가지고 나왔다. 할아버지께 갖다드렸더니 '어, 있네?' 하시며 받아들이셨다. 지팡이로 두드리는 거 보다야 한참 나았다.

 

이거 뭔지 아시죠?

 

 

"할아버지 드시고 싶으신 거 있어요?"

할아버지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안그래도 할머니께서 '잘 안 먹어! 자꾸 음식 하지 마!'하며 샤우팅을 하고 계셨다.
"아니, 그래도 내가 온 김에 맛있는 거 해드리게요. 뭐 드시고 싶어요?"

할아버지께서 가만히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다.

"잡채...?"

"잡채! 또 먹고 싶으신 거 있어요?"

또 고개를 저으시는 할아버지.

"그럼 내일 장봐서 잡채 해올게요!"

그렇게 메뉴 확정. 하지만 나는 잡채를 잘 하지 못하는데...? 엄마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프랑스에서 먹던 식으로 해서 가져와볼까 생각했는데 입에 맞으시려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제안은 하지 않았고 그냥 해서 갖다드려보기로. (하기도 전에 안 먹고 싶다고 하실 수도 있으므로.)

 

 

할아버지댁에서 나와 집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한없이 작아지신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파 발걸음도 느렸다. 만나서 기쁘면서도, 얘기나눠서 좋으면서도. 괜히 할아버지께 화내시는 할머니도 마음이 쓰여서. 눈에 보이는 아픔도 보이지 않는 아픔도 다 버거워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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