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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프스코댁 다이어리

한국편 스페셜] 여명 - 일꾼 하나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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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어제 자가격리가 끝나고서 나는 부모님댁으로 내 살림(?)을 옮겼다. 내가 없는 사이 집안 구조에도 변화가 꽤 있었다. 엄마 방도 생기고 아빠 사무실도 생겼다. 대신 나와 내 동생 방은 따로 없다. 왜 엄마 방을 따로 만들었냐고 하니 엄마가 아빠보다 한참 일찍 일어나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만히 누워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방에 불을 훤히 키고 먼저 하루를 시작할 수도 없어서 그냥 엄마 방을 하나 만드셨다. 엄마는 먼저 일어나시면 이 방에서 성경을 읽으시거나 책을 읽으며 먼저 하루를 시작하시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농사 일로 두 분 다 새벽부터 스케줄이 꽉 차 있다만. 엄마의 방은 뭔가 따뜻한 느낌이 났다. 그동안 자신만의 공간이 없으셨는데 이 방에서 엄마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셨으면 좋겠다.


나는 집에 있는 동안 엄마 방에서 자기로 했다. 아침에 강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방. 눈이 절로 떠지는 맑은 아침. 기분이 상쾌했다. 이제 그 어둑하고 고독한 자가격리는 끝이구나.


아침 밥은 무려 아빠가 만드신 빵. 호박 씨, 건포도, 호두를 넣고 통밀로 반죽하여 계피로 풍미를 더한 식빵으로 배합이 완벽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맛이 없었어. 할 때마다 배합을 조금씩 다르게 해서 기록을 해두는 거지. 그리고 딱! 이 비율을 찾은거라. 맛있제?"

"와, 진짜 맛있어요. 저보다 잘하시네요."

프랑스댁인 나보다 빵을 잘 구우시는 우리 아빠의 솜씨에, 그리고 아빠의 새로운 취미에 깜짝 놀랐던 시간.


그리고 또 한 번 놀랐으니...

"자, 이제 밥 먹자!"

"네? 방금 빵 먹었잖아요? 아침 밥 아니었나요?"

"빵은 밥이 아니지. 밥을 먹어야 밥이지!"

그랬다. 빵은 에피타이저였다! 반대로 부모님께서 우리 집에 놀러오신다면 우리 아침 밥 스타일에 깜짝 놀라실 게 분명하다. 우리는 빵 한 두 조각에 커피나 차 한 잔으로 식사를 끝내기 때문이다. 신랑은 요즘 케토 다이어트를 한다고 탄수화물을 아예 먹지 않고 그저 계란프라이 하나 해먹으니 더더욱 놀라시겠다.

"너도 밥 먹지?"

"오우... 아니요. 저는 아침부터 많이 먹으면 배가 고생해요..."

만성장트러블러는 그렇게 슬쩍 발을 뺐다.


밥이 다 차려지기 전 아빠가 건조기에 말린 고추를 빼야된다고 하셨다.

"도와도!"

우리는 함께 마당으로 나와 잘 마른 고추를 자루에 넣었다.

"양쪽에서 판을 딱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루를 잡고, 그렇지. 중간판부터 자아~!"

아빠와 호흡을 맞춰 일을 하니 금방 끝났다.

"혼자 하면 힘들어. 농사는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이랑 해야되는데..."

아빠가 말끝을 흐리셨다. 내가 너무 멀리 살아서 아쉽다는 뜻이겠지.



오후에는 고추를 세척했다. 요즘은 세척기 농기구가 잘 나와있다. 세차장과 비슷한 원리로 고추를 씻는다. 우리가 윗 판에서 좋은 고추를 선별해 밑으로 보내면 바닥이 움직이면서 고추를 앞으로 보내고 위에 달린 세척솔이 돌아가며 고추를 씻어준다. 다 씻긴 고추가 출구로 빠져나오면 아빠가 대기하고 계시다가 판에 올려 건조기애 넣으신다. 건조기가 다 차면 문을 닫고 온도와 시간을 맞춰 건조시킨다. 

이런 기구가 있어서 농사일이 그나마 수월하다. 할머니 때만 해도 다 일일이 씻고 바닥에 펼쳐 말리고 비가 오면 다시 거둬야했다. 저 기구가 있어서 그런 단계는 생략이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게 농사일. 새벽 5시부터 저녁 8시, 때론 밤 10시까지 일하시는 부모님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농기구에 대한 개발이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서 농사에 큰 혁신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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