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이어리/프스코댁 다이어리

한국편 스페셜] 여명 - 고마운 사람들

반응형

8월 20일.

금요일 새벽 비행기라서 일찍 잠자리에 들려는 참이었다. 목요일 저녁, 신랑은 교회 회의에 참석하고 없었다. 회의는 보통 저녁 8시에 시작해 11시에 끝나곤 했으므로 기다리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런데 밤 9시가 되어 현관문이 열렸다. 신랑이 돌아온 것이다.

"왜 벌써 왔어? 보통 11시나 되야 회의가 끝나잖아?"

"응! 그런데 내일 너가 한국 간다고 하니까 빨리 보내주더라. 한 달 동안 너 못 본다고,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야 한데. 너랑 같이 먹으라고 디저트도 주셨어."

신랑의 손에는 근사한 모양의 디저트가 들려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발코니에서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디저트를 끝냈고 서로의 눈 속에 풍덩 빠져 떠다니는 별을 잡으려 했다.

비행기표 끊는 일만 남았을 때 나는 좀처럼 결심을 하지 못하고 주춤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표 사는 것을 오후로 미뤘다가 저녁이 되고, 눈 떠보니 그다음 날로 고민이 넘어가 있었다. 아무래도 남편을 혼자 두고 가는 것, 피아노 레슨 일정을 미루는 것, 인턴 일을 잠시 중단해야 하는 것 모두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그때 내가 한국행을 결심할 수 있도록 주변 모든 이들이 나를 격려했다. 신랑도, 시댁 식구도, 교회 공동체도, 피아노 레슨을 받기로 한 집들도.

 

사실 남편을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인도네시아에서 NGO 활동가로 수 년을 살았는데.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늘 온갖 야채를 맹물에 끓이거나 찌는 것이지만 그것도 본인 취향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게 미안했다. 없는 성질도 돋우는 프랑스 행정 처리할 게 남아있었고, 우리의 인턴기간이 끝나고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는 단계여서 또 처리해야 할 서류더미, 일더미, 연락 더미에 남겨두려니 미안했다. 플러스로 독박 집안일까지.

신랑은 본인보다 늘 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 신랑을 서운하게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신랑은 늘 나를 먼저 챙긴다. 본인 일도 미뤄두고. 그래서 나도 신랑을 먼저 생각하려고 하는데 아직 많이 서툴다. (난 뼛속까지 이기적인 사람......ㅠㅠ) 아무튼, 그런 신랑은 힘들 때마다 기대게 되는 든든한 나무같다. 오죽하면 그가 형이라고 부르는 분이 그를 두고 소나무 뿌리 같다고 했을까.

 

내게 피아노 레슨을 부탁했던 분들도 나의 사정을 백번 이해해 주셨다. 잘 아는 분들이기도 하지만 10월달부터 해도 된다며,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오히려 위로했다. 인턴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프로젝트에서 나의 비중이 적긴 하지만 진심으로 동감하고 마음 쓰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시댁 식구들도 본인 일처럼 생각하며 나를 위로하고 또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해줬다. 한국으로 가기 전 날 시어머니께서 대표로 우리 집까지 오셔서 가족들 갖다 주라며 작은 기념품을 손에 들려주시기까지 했다. 

할아버지께서 아프시게 된 경위와 나의 심정, 가족들과 할아버지의 상황에 대해 만날 때마다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공감해주던 사람들. 그들이 있어 참 고맙고 행복하다.

 

p.s. 농사일 하루종일 하고 글을 쓰려니... 힘들구려. 안 그래도 작은 눈을 반쯤 뜨고 있다... 내일도 이러려나. 몸이 좀 적응되면 낫겠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