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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프스코댁 다이어리

한국편 스페셜] 여명 - 해외입국자, 앰뷸런스타고 집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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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가는 분, 어디 계세요?"

동대구역 선별소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나를 찾았다.

"아, 접니다..."

내가 손을 들자 그분께서, '서류 작성 끝나시면 바로 앰뷸런스로 모셔드릴게요.'라고 했다.

"앰뷸런스에 저 혼자인가요?"

"예."

웁스. 나 한 사람을 위해서 그 먼 거리를...?! 감격스러웠다. 프랑스 친구들에게 알려주면 분명 놀랄 게 틀림없다. 나 조차도 놀랐는걸!

 

완전놀람!

선별소에서 서류를 작성한 뒤 구급차에 올라탔다. 난생처음으로 타보는 구급차. 주위를 찬찬히 둘러봤다. 스타렉스를 개조한 것 같은 형태였다. 문을 열면 바로 앉는 좌석이 하나 있고 그 옆에는 침상이, 침상 옆에는 응급용품을 보관하는 진열대가 길게 있었다. 운전석과 환자석 사이에는 칸막이가 있고 유리창문이 나있었다.

"더우시면 말씀하세요."

구급대원분이 창문 너머로 말씀하셨다.

"네."
대답하며 백미러를 바라보았는데 그곳에는 환자석을 다 볼 수 있는 화면이 설치되어 있었다. 화면 속에 내 뒤통수가 보였다. 아무래도 카메라는 저 뒤쪽에 설치되어 있는 것 같았다.

 

대로에는 차가 꽤 있었는데 구급대원이 사이렌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차들이 양 옆으로 비켜서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사이로, 도로 정 중앙선을 따라 유유히 지나갔다. 진귀한 경험이었다. 다만 사이렌을 군 보건소 가는 내내 울리는 바람에 신경이 쓰였다. 응급요원은 출동할 때마다 이 사이렌 소리를 듣고 다녀야 한다니... 쉬운 직업이 아니다.

 

유심칩을 갈아 끼우자마자 내게 문자를 보냈던 분이 전화를 걸었다. 집에 도착했는지 물었다. 흠... 아니요. 9시 48분에 동대구역 도착이라고 문자 보냈지 않나요^^;; 지금은 10시인데... 어디쯤 갔는지 묻는다는 게 말이 그렇게 튀어나왔겠지. 평소 같았으면 공항에서 집까지 4시간 반 정도 걸릴 테지만 격리 절차를 거치고 또 거치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10시 7분 동대구에서 출발하여 11시 25분, 약 1시간 20분 만에 군 보건소에 도착했다. 내리자 코로나 검사 부스가 있었다. 실내로 못 들어가고 창구를 통해 소통했다. 창구는 투명 칸막이로 닫혀있고 대신 기다란 일회용 장갑이 안에서 밖으로 끼워져 있었다. 나는 칸막이를 통해 신원확인을 한 뒤 검사를 받았다. 직원이 봉함되어있던 새 면봉을 꺼냈는데 아주 길었다. 검사 방법에 대해 듣기도 했고 영상으로 면봉을 보기도 했지만...... 막상 내가 검사를 받으려 하니 엄살을 부리고 싶었다.

"입을 열고 아- 길게 소리 내세요."

줄곧 양치를 못해서 별로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더러운 내 입을 커다랗게 벌려 아- 소리를 냈다. 면봉이 내 목젖 주위를 문질문질 하는 게 느껴졌다. 다 끝나기도 전에 내 호흡이 짧은 관계로 '아-' 소리는 멈춰버렸다. 어쨌든 목구멍 검사 끝. 그다음은 대망의 콧구멍 검사였다. 저 기다란 면봉이 내 콧속에 들어갈 거라고?!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젖혔다. 면봉이 슬슬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어디까지 가는 걸까? 내 뒤통수 어느 부분에 닿은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면봉이 빙글빙글 돌며 점액 채취를 시작했다. 엄~청 아프지는 않은데... 아프다. 불쾌하게 아프다. 콧김을 흥! 불어 빨리 빼내고 싶은 답답함과 함께. 면봉이 빠져나오자마자 나는 '으엑!'하고 나지막하게 소리를 뱉었다. 나를 검사해준 분은 남자분이었는데 내 그 더러운 입과 콧속을 보여준 것이 쪽팔렸다.

검사가 끝나자 보건소 직원분이 손소독제와 분무기 타입의 소독제, 쓰레기봉투, 마스크, 체온계가 든 종이봉투를 건넸다. '자가격리가 잘 끝나고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네요'하는 응원과 함께 나는 다시 구급차에 올라탔다.

대구에서 보건소까지 너무 피곤한 바람에 기절한 듯 왔지만 집까지는 눈을 부릅뜨고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내가 잘 아는 풍경. 내가 사랑하는 산과 밭과 나무와... 집에 가까워질수록 행복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우리 집은 워낙 산 안쪽에 있어서 지도에 주소마저 제대로 안 나왔다. 구급대원께서 반장님 집으로 들어가기에 '엇, 저희 집 여기가 아니에요!'하고 외쳤다.

"아, 그렇습니까? 지도에는 이렇게 나와있어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아무튼, 다시 산으로,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 집이 있는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고추가 잘 영글어있는 밭이 산비탈을 따라 펼쳐진 것을 보았다. 드디어 집이구나!

부모님이 웃으면서 나오셨다. 당장에라도 품에 안기고 싶은데 그러진 못하고 나는 바로 내가 격리할 건물로 들어갔다. 부모님과는 문 앞에서 멀찍이 떨어져 춤추듯이 손을 방정스럽게 흔들며 인사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마스크를 벗었다. 제네바 공항에서 집까지 장장 20시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중간중간 물도 마시고 음식도 먹느라 빼긴 했지만. 내 마스크는 시어머님이 만들어주신 면 마스크였는데 여행의 채취가 배여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3개를 만들어주셔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코로나가 아니라 이 냄새로 질식사할 뻔했다. 

 

엄마가 밥 배달을 오셨다. 푹 고아 만든 닭국과 방금 지은 밥, 아삭아삭 오이무침, 우리 엄마 시그너처 멸치볶음, 그리고 김치! 김치가 장난이 아니게 맛있었다. 한 입 베어 물면 '아삭'소리를 내며 배추가 찢어지는데 양념이 잘 베인 배추가 톡 하며 맛을 뿜어낸다.

"김치 없이 어떻게 1년을 살았지?!"

어떻게 이 맛을 잊고 살았나 그게 더 신기할 정도로 너무 맛있었다. 아... 이번에 한국을 떠날 땐 진짜 김치가 너무 아쉬울 것 같다. 나 한국인 맞네,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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