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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프스코댁 다이어리

한국편 스페셜] 여명 - 코로나 상황에 비행기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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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50분. 알람이 울렸다. 베개에 잠시 얼굴을 파묻었다가 눈을 번쩍 떴다. 이대로 게으름을 피우다가는 아침 비행기를 놓칠 판이다.

휴대폰 화면을 보니 아빠의 카톡이 와있었다.

공항에 마중나오지 못한다는 메시지였다.

"미야, 내일 개인 마중이 안되네. 그래서 공항에 오면 코로나 검사 후 광명역으로 가서 KTX로 동대구로 간다. 동대구에서 사설 앰뷸런스로 집까지 오거든. 우리 군이랑 사설 앰뷸런스랑 계약되어 있대. 먼저 읍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 후 집으로 데려다줄 거야. 앰뷸런스는 20만 원 군에서 지원하고 아빠가 10만 원 주면 된다. 우리가 가면 되는데 그러면 우리도 자기 격리해야 되네. 그럼 시장은 누가 보노? 농사도 지어야 하는디... 번거롭더라도 이렇게 해야겠네. 본소에서 네 폰으로 연락 갈 거야. 내일은 휴무라네. 네 폰 번호 그대로 쓰지? 바뀌었으면 연락 가능한 번호 가르쳐줘. 조심해서 오고."

아빠의 카톡을 보고 잠시 흠칫 했다. 아빠는 이 정보를 어디서 얻은 거지? 내가 오는 걸 군에서는 어떻게 벌써 알고 있지?

"너 데리러 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 문의해 봤다."

아, 아빠가 먼저 연락을 했던 거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평범한 방법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비로 20만원을 내면 공항에서 집까지 앰뷸런스로 바로 온다고까지 말씀해주셨다. 생각해보다가 아무래도 구급대원 분이 너무 먼 거리를 오가게 되는 것 같고 비용도 많이 들어서 KTX를 타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5시 45분. 

"행복해 보인다! 가방 다 잘 챙겼지?"

새벽이 깔린 도로를 달리며 신랑이 말했다. 

그 이른 아침에도 차가 제법 많았다. 출근하는 두베노아즈(Douvainois: 두베인 거주자)였다. 우리 동네는 스위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제네바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동네가 일종에 위성도시인 셈이다. 유럽의 열린 국경은 이토록 자유롭고 편하다.

공항에 도착했다. 실내로 들어가보니 손님보다 직원 수가 더 많아 보였다. 그야말로 텅텅 빈 공항. 제네바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어서 비교를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긴 하지만 이렇게 헐렁하다 못해 썰렁한 풍경은 처음이었다. 난 애플리케이션으로 체크인을 미리 해서 배기지 드롭만 하면 됐었다. 대기 줄이 아예 없는 카운터까지 가방을 들들 끌고 직행했다. 티켓 정보를 보여주고 가방을 맡긴 다음 위층으로 올라갔다. 가는 내내 정말 사람 보기가 힘들었다. 신랑과 인사를 한 뒤 보안검색대를 지나 인터내셔널 존에 들어가기까지 15분이 채 걸렸을까.

 

루프트한자 항공. 기내는 예상과 다르게 꽉 차 있었다. 내가 탄 비행기는 70~100인승 제트여객기였던 것 같다. 굉장히 작은 비행기로 제네바에서 뮌헨까지 운항했다. 입구에서 소독물티슈를 나눠주길래 앉자마자 개봉해 내 손과 팔걸이를 닦았다. 옆 승객과 최대한 접촉을 피하며. 승무원이 캐리어를 사물함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알겠다고 하고 넣으려는데 승무원이 도와주려 하기에 내가 하겠다고 했다. 혹시라도 바이러스가 승무원에게 옮겨갈까 봐 한 거절이었는데 그 반대로 생각했으면 어쩌나. 그도 그럴 것이 이 유례없는 여행길에 신경이 곤두선 데다가 마스크를 끼고 있어 전혀 매너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불안한 눈빛과 뻣뻣한 몸짓으로 "제가 할게요!"라고 했으니. 미안해요, 상냥한 승무원 씨.

마스크를 끼고 숨을 쉬려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제네바에서 뮌헨까지는 약 1시간 거리로 잠시 엉덩이 붙이는 사이 도착했다.

출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이곳도 물론 줄이 길지 않았다. 비행기 놓칠 염려는 할 필요가. 그러나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기 시작했는데 내 비자 때문이었다.

'침착하자, 휴우. 숨 크게 쉬고. 괜찮아. 다 차근차근 잘 설명할 수 있어.'

나는 긴장할 때 스스로를 많이 타이르는 편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헬로!"

젊은 아가씨가 경쾌하게 인사를 했다. 내 여권을 받아 들더니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폈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한지 뒤로 넘기며 살피고 다시 앞으로 넘기며 살폈다. 그래도 원하는 걸 못 찾았는지 옆 직원과 독일말로 대화를 한창 하고 다시 내 여권을 살피기를 반복.

"체류증 주시겠어요?"

"비자 1년 차라 거주증은 없습니다."

프랑스 영사관에서 비자 2년 차부터 거주증을 발급해준다고 설명한 것을 기억해냈다.

"한국으로 완전히 가는 겁니까?"

"아니요. 제 남편이 여기 있습니다. 한국에는 가족들을 만나러 잠시 갑니다."

내 대답을 듣고는 다시 내 여권을 뒤적이는 심사원.

"바이!"

아까까지만 해도 심각한 표정으로 여권을 살피던 심사원이 환히 웃으며 내 여권을 내려놨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나는 목에 뭐가 걸린 듯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심사대를 빠져나왔다.

인터내셔널 존에 들어서서야 떨리는 내 다리가 느껴졌다.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국으로 갈 수 있어! 나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는 이들 그리고 그 기도에 응답한 이에게 감사가 절로 나왔다.

정말 가로막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염없는 줄도 없고. Such an experience라고 밖엔 할 말이 없었다.

문득 우리나라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전 세계가 같은 상황을 맞이했지만 한국은 신속하게 대응해 많은 국가의 모범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호기심과 부러움 섞인 관심을 보이곤 했다. 그런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로 돌아간다. 한국에 도착하면 신세계처럼 느껴지리라. 우리나라가 새롭고도 낯설 것 같았다.

뮌헨에서 인천 가는 비행기. 12시 45분 출발이었는데 탑승객이 적고 티켓 확인을 일찍 한 탓에 모두가 여유로웠다. 게다가 12시 20분에 승객이 다 탑승했다는 공지가 나왔다. 사실 마지막 손님 중 두 번째는 나였는데 화장실 갔다 오는 새 다 탑승한 것.

다들 어디에...?
기내식은 파스타. 프렌치 드레싱 말고 절먼 드레싱 주세요 ^^
프로스트! 가 독일말이었구나?! 건배!!
내 곁을 함께 한 별

 

12시 30분. 기장의 안내방송이 다 끝나고 비행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처럼 일행이 없는 승객은 한 라인에 한 명씩 자리 배치를 받았기에 좌석 3개를 다 차지해도 무방했다. 내내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하는 것 빼고는 편안한 여행이었다. 창밖을 보고 싶을 땐 창가 자리에 앉았다가 잠이 오면 옆자리로 다리를 쭉 뻗었다. 매일 올려다보던 별이 오늘은 아래로 떠있다. 컴컴한 밤하늘 위로 잠잠히 반짝이며 나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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