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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프스코댁 다이어리

한식 먹고 싶어서 미치겠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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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식이 먹고 싶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식을 잘 안 하는 이유는 일단 재료구하기가 쉽지 않다. 육수의 기본인 멸치와 다시마를 파는 걸 본 적이 없다. 배추는 황금보다 희귀하다. 가끔 초겨울에 판매하기는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통통하고 속이 꽉 찬 배추는 당연 아니다. 시금치 같은 경우는 밑동 없이 이파리만 판매하고 잎의 크기가 굉장히 크며 달짝한 맛이 없다. 된장을 끓일 땐 애호박 대신 쥬키니를 넣고 새송이나 팽이버섯 대신 양송이버섯을 넣는데 뭔가 늘 아쉽다.

두 번째로는, 한식이 많이 복잡하게 느껴진다. 서양식은 샐러드와 메인메뉴 한 두 가지만 준비하면 충분한데 한식을 그렇게 차리면 너무 심심하고 만족스럽지 않다. 반찬을 한 번 할 때마다 양을 많이 해서 냉장고에 재어놓으면 되지만 그러기가 어렵다. 우선 내 장이 너무 예민해서 며칠 지난 음식을 잘 못 먹는다. 한 번 해서 그날 바로 먹고 끝내야 한다. 또 입이 짧아서 같은 음식을 여러 날 해먹을 용기가 없다. 냉장고 사이즈가 우리나라와 다르게 매우 작은 것도 문제다. 이곳에서는 식재료 보관용으로 쓰이는 탓이다. 반찬이나 남은 음식을 여러 종류 재어놓지 않는다.

세 번째로는 한식을 어쩌다 한 번 해도 '그 맛'이 안난다. 항상 2프로 부족하다. 간장, 고춧가루, 액젓과 같은 양념의 맛이 다르기도 하고 같은 식재료라도 땅이 달라서 그런지 미묘하게 맛 차이가 난다. 감자, 당근부터 시작해서 닭, 소, 돼지 등등 한국에서 알던 친구들이 아닌 것 같다.

한식을 하기 어려운 이유를 여럿 댔지만 사실 내 손 맛이 없는 게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한국을 떠나기 전 한식에 대한 마음 끊는 연습을 반년간 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겠노라 스스로에게 일렀다. 식재료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포함 경제적, 문화적으로 가장 적합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러면 타국 생활에도 빨리 적응하고 현지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겠지.

연습 덕분인지 정말 잘 적응했다. 새로운 식재료와 맛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또 식전통이나 식문화로부터 자유로워지다 보니 오히려 건강식단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영양소를 균형 있게 갖추는 방법에 많은 초점을 맞추게 됐다.

그런데...... 요즘은 내 본능이, 내 뼛속 깊이 새겨진 한국의 맛이 내 마음을 조종하는 것 같다. 이번 주 내내 한국 음식만 했다. 돼지 주꾸미볶음, 순대 비슷한 맛 나는 소시지 들어간 짝퉁 순댓국, 된장국, 김밥 등등.


 

참으로 신기한 건 내가 하는 사소한 생각을 마치 하나님께서 듣기라도 한 듯, 마트에 냉동 주꾸미와 만두가 기획전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생전 못보던 식재료가 나타난 덕에 한식에 대한 갈망을 달랠 수 있었다. 나는 신의 유머감각에 감동하여 하늘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

오늘도 본능에 충실하여 한식을 차렸다. 오늘은 반찬을 여럿 해봤다. 엄마가 해준 반찬 중에 어렸을 때부터 찐으로 좋아하는 게 있다. 바로 오이무침. 오늘따라 그게 너무 먹고 싶더라. 엄마께 보이스톡을 했다.

"오이랑 양파에 고춧가루, 젓갈, 소금, 다진마늘, 설탕... 어... 그러면 끝이야."

"얼마큼 씩 넣어야 돼요?"

"적~당~히~ 뭐든지 적당히!"

이래서 한식은 어렵다. '적당히' 양념을 한 뒤에 간을 보는데 오늘도 역시나 '그 맛'을 내기는 틀렸다.

"맛있긴 한데 엄마가 해준 거랑 달라요. 에이, 어쩔 수 없죠 뭐."

뭘 차리나 맛있게 잘 먹어주는 신랑과 함께 배부르고 행복한 점심이었다. 만든 반찬들을 상 위에 늘여놓으니 한국 생각이 많이 났다. 맛도 제법 한국스러웠다. 밥은 재스민 쌀을 산다는 게 깜빡하여 길쭉한 바스마티 쌀로 지었지만. 양송이버섯 들어간 된장국은 뭔가 많이 아쉬웠지만. 민물고기 생선은 어딘가 많이 싱거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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