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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로그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는 베토벤『베토벤, 최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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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하기 먼저 아르테에서 출간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살펴봐야할 같습니다. 이 시리즈는 대중이 고전에 좀 더 편안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작가들은 거장이 주로 활동했던 국가와 도시들을 다니며 당시 상황과 작품에 대해 설명을 덧붙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시리즈는 여행서처럼 우리를 거장들의 도시로 안내하고 역사 속으로 걸어들어가 거장의 삶과 고전을 만날 있도록 돕습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저는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번째, 베토벤의 주무대였던 오스트리아 빈에 가보고 싶다. 번째, 베토벤의 작품을 각잡고 들어보고 싶다. 저희 집에서 오스트리아 빈까지 그리 멀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휴가철에 있긴 한데 아무래도 어려움이 많은 시기죠… ㅠㅠ 빈에는 못가더라도 베토벤의 음악만큼은 마음껏 들었습니다. 작품 소개가 나올 때마다 너무 궁금해서 못참겠더라구요. 스포티파이와 유튜브를 마구 뒤져서 시간이고 빠져 있었네요.

프라하성 안에 있는 로브코비츠 공작 저택 관람은 뜻밖의 선물과도 같았다. 베토벤의 주요 후원자 중 하나이자 빈의 저택에서 교향곡 〈영웅〉이 사적으로 초연될 수 있도록 무대를 마련했던 로브코비츠 공작은 보헤미아의 귀족으로, 열성적인 음악 애호가였다. 그는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에 능했고, 좋은 베이스 음성을 가진 아마추어 성악가이기도 했으며, 음악가들을 집에 불러들여 다양한 악기 편성의 앙상블을 구성해 연주를 지원하기도 했다.
 빈이라는 도시를 돋보이게 하는 여러 건물들 중에서도 음악회가 열리는 극장들에 유독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최고 수준의 오페라 무대를 경험할 수 있는 빈 국립오페라극장 그리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신년 음악회를 여는 무지크페라인 Musikverein은 오늘날 빈에서 열리는 음악회의 중심이 되고 있다. 베토벤 시대에 중요한 음악회가 열리던 극장으로는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가까운 케른트너토어 극장, 부르크 극장, 안 데어 빈 극장 등이 있다. 이 중 부르크 극장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베토벤이 교향곡 1번을 처음 선보인 곳으로, 이 곡은 슈비텐 남작에게 헌정되었다.

 

베토벤은 뛰어난 작곡가이기 이전에 압도적인 피아니스트로 먼저 그의 이름을 날렸다고 합니다. 마치 뛰어난 검투사처럼, 포효하는 야수처럼, 화려한 즉흥연주와 새로운 연주기법으로 청중을 사로잡았을 베토벤의 연주는 어땠을까요? 그의 연주에 대한 묘사를 읽어보다가 발렌티나 리시차가 떠올랐습니다. 건반 위의 마녀 혹은 검투사라고 불리는 그녀의 연주가 베토벤의 야성미 넘치는 테크닉을 복원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당시 귀족의 살롱에서는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 연주 대결을 벌이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오락거리였다. 피아니스트들의 즉흥연주 대결은 마치 검투사의 경기나 야수들의 싸움처럼 묘사되었는데, 베토벤은 항상 상대방을 완전히 압도했다.

 

베토벤이 청각장애를 딛고 불후의 명곡들을 써내려갔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가 청각을 거의 상실한 때가 30살 쯤 이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저는 베토벤이 이렇게 일찍 청각을 잃은 모르고 있었어요. 그리고 황제, 월광, 환희의 송가같은 대작들이 그가 청각을 상실한 이후에 탄생한 작품이라니요…

1802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쓰다 - 빈 근교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점차 악화되는 귓병을 비관하며 동생들에게 유서에 가까운 편지를 쓴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라 불리는 이 편지에서 베토벤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고통에 대한 절망감을 드러내지만, 글을 쓰면서 내면에 숨어 있던 뜨거운 예술혼을 발견하고 전보다 더욱 대담하고 혁신적인 작품들을 내놓는다. 베토벤 음악 연구가들은 유서 이후 1808년까지 약 6년간 강렬하고 극적인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해서 이 시기를 ‘드라마틱 소나타 시기’ 혹은 ‘걸작의 숲’이라고 부른다.

 

베토벤은 청각을 잃어가며 성격이 점점 고약해져갑니다. 건반 위에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화려한 연주를 뽐내던 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중단하고 사교계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게 되죠. 본인이 작곡한 연주를 지휘하는 것도 쉽지 않아 아슬아슬한 오케스트라 무대를 올리기도 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베토벤이 미간에 인상 쓰고 마이웨이 하는 모습이 그려지더군요. 데뷔 시절에는 본인이 잘난 너무 알아서 당당하게 거리를 휘젓고 다녔을 테고 청각을 상실하고서는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항의하듯 거칠게 걸어다녔을 같아요. 베토벤의 험상궃은 초상화가 괜히 그런식으로 그려진 아니다 싶습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삶이 닿아있다는 점은 뇌의 구석을 환기시키는 듯 하더군요. 이건 마치 정명훈과 조성진 거장의 활동을 따로따로 쫓아가다가 사람의 협연 소식을 접한 것같은 기분이랄까요. 항상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생애를 각각 배우게 되서 그런지 동시대 인물이라는 망각하기 십상이에요. 주요 활동시기가 다르긴 하지만 음악사의 바톤을 서로 이어주고 있는데 말이죠.

그러나 19세기가 도래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시민계급의 성장과 함께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베토벤 시대에 이르러 예술 시장이 발전하면서 힘의 무게중심이 예술의 수요자에서 생산자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모차르트의 활동은 수공업 예술가 시대와 예술가 예술 시대를 잇는 과도기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그는 경탄할 만한 신동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유명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18세기 음악가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성격상 어디에 얽매이는 걸 싫어한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 궁정음악가 생활을 견뎌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베토벤의 스승이었던 하이든이 살았던 18세기에 예술은 궁정이나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음악을 주문 생산해내는 기능적인 측면이 강했다.
대중성과 예술성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 작품을 출판해야 하는 것이 베토벤에게 큰 숙제였다.

 

베토벤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가 살던 본은 당시 계몽주의 바람을 타고 있었습니다. 베토벤은 스승 네페와 후원인 발트슈타인 백작이 회원으로 있는 독서회에 정기적으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친구들의 권유로 대학의 철학과 고전문학 강좌에 등록해 강의를 듣기도 했고 많은 고전문학을 탐독했습니다.

베토벤의 스승 네페와 후에 베토벤이 빈으로 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발트슈타인 Ferdinand von Waldstein 백작도 독서회 회원이었다. 당시 베토벤은 미성년자는 독서회 회원이 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정식 회원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독서회 모임에 참석해 새로운 책과 잡지를 읽으며 사람들과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그곳에서 그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음악과 인간과 신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당대의 문화와 사상에 대한 많은 지식들을 얻었을 것이다. 베토벤이 열한 살 이후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것은 독서회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는 칸트뿐만 아니라 『플루타르크 영웅전』과 그리스 로마 신화 속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베토벤은 두 곡의 발레 음악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서곡으로 유명한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이다.

 

베토벤이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베토벤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중산층이 급부상했고 음악이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되자 귀족은 자신들의 직위를 특별하게 구분해줄 있는 음악을 찾게 됐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기존의 장르를 벗어나 심오하고 실험적이었기에 귀족들의 욕구와 맞았습니다. 베토벤은 귀족계층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음악활동을 안정적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이 세대의 취향에만 맞았더라면 금방 잊혀지고 말았을텐데요. 그의 음악에는 강하고 깊은 울림이 있어 오늘날 청중의 마음도 사로잡습니다. 이는 그의 음악적 천재성과 더불어 인문학으로 그의 음악세계를 깊고 넓게 구축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또한 운명에 저항하여 싸우듯 살아온 그의 삶이 음악에도 녹아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지도요. 베토벤의 음악은 이렇게 인류가 타락 이후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운명에 대한 저항정신, 인류애, 지식에 대한 욕망 등등을 깨우는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1977년에 미국 우주항공국 NASA은 무인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를 발사했다. 보이저호에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외계 생명체에게 전하는 인류의 인사를 담은 골든 레코드를 탑재했는데, 이 음반에 바흐, 모차르트 등의 곡과 함께 베토벤의 작품 두 곡이 수록되었다. 하나는 〈운명〉의 1악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현악 4중주 13번 B플랫 장조〉이다.
베토벤이 1827년 3월 24일에 작곡가 모셸레스Ignaz Moscheles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3월 23일에 그는 죽음이 매우 가까워졌음을 느꼈는지 쉰들러를 불러 마지막 말을 받아 적으라고 한다. 그는 라틴어로 “친구들이여, 박수를 쳐라. 희극은 끝났다!”라는 말을 남겼고, 그때 그의 곁에는 슈테판도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을 잃은 베토벤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뒤 폭풍우가 몰아치던 1827년 3월 26일에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다. 그는 갑자기 눈을 뜨고 오른손을 들어 올려 운명에 저항하는 주먹을 휘둘렀고, 그날 오후 5시 45분에 끝내 숨을 거두었다.

책을 쓰신 최은규 음악평론가가 클래식톡 유튜브 채널에서 베토벤 걸작 10선을 소개합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 뿐만 아니라 앨범 추천도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레어한 앨범에 대한 정보도 얻으실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간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벼운 고전산책길 되시길 ^^

  1. 셰익스피어
  2. 니체
  3. 클림트
  4. 페소아
  5. 푸치니
  6. 헤밍웨이
  7. 모차르트
  8. 뭉크
  9. 아리스토텔레스
  10. 가와바타 야스나리
  11. 마키아벨리
  12. 피츠제럴드
  13. 레이먼드 카버
  14. 모네
  15. 에리히 프롬
  16. 알베르 카뮈
  17. 베토벤

 

밀리의 서재에서 이 책 바로 읽기

 

베토벤

베토벤의 음악은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 무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이다. 올해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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