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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편 스페셜] 여명 - 가족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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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가족이란

껴안아야 하는 아픔일까

무심해져야 하는 혈연일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바꿀 수 있는 대물림일까

 

가족과의 재회는 기쁘기도 하고 멍든 곳을 누른 것처럼 찡-하게 아프기도 하다. 마주해야 하는 과거. 대부분 현재형으로 진행 중인 과거들. 화해하지 않은 다툼, 서로가 싫어하는 행동과 말투, 헤쳐 놓은 상처는 보통 마무리 없이 그냥 잊고 살거나 묻어두고 살다 보니...... 소중하고 애틋하고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 건 사실상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가장 무뎌지기 쉬운 부분은 가족이기 전에 한 개인이라는 점인 것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각자 좋아하는 음식, 색깔, 스타일, 음악 이런 작은 부분부터 시작해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 인생의 가치관 등등이 많이 다르다.

나는 우리 가족의 울타리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이런 부분들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성격이나 가치관 등등 서로 닮은 부분이 많아서 차이점에 민감하지 못했던 것일까? 공통분모가 많아도 아주 똑같은 사람인 건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서로 비슷하니 소소한 갈등은 적었다. 다만 의견 차이가 크게 일어났을 때 우리는 대화하지 못하고 폭발해버리곤 했다.

"우린 가족이야! 이견이 있을 수 없어!"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서로의 개성과 차이점에 얼마나 민감할까? 지금도 우리는 서로의 차이점 대부분을 모르고 사는지도. 지난 번 막내 동생이 패션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을 때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

"그런 관심이 있는지 몰랐네!"

그래도 요즘은 서로의 차이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각 개인이 지나온 과거와 현재 속에서 그 사람을 재발견할 필요 또한 느꼈다. 예를 들어, 나는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엄마는 종종 내게 하소연하듯 웃어른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나로써는 무척 피하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엄마는 왜 할 말 못 하고 나한테 와서 그 서러움을 쏟아붓는지 납득이 안 됐다. 게다가 엄마의 서러움을 받아주고 있자면 덩달아 암울해지고 없던 미운 감정도 생긴다.

'엄마는 왜 이렇게 나약하실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엄마 이야기 다 들어주는 착한 딸 노릇을 그만둬야 해.'

심리학 서적에 물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에 가서 마주한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딸을 겨우 설움받이로 여기고 당사자에게 할 말 다 못하는 그런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는 한국의 고질적인 상하 가족 관계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해왔을 뿐이었다.

나는 엄마가 해온 역할과 한국의 가족문화, 우리 가족이 서로 관계를 맺어온 방식, 각자의 배경 등등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서로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여전히 문제에 대한 해결은 본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적정선에서 나는 뒤로 물러나 청자이기를 그만둘 필요도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관계의 악순환이나 나쁜 감정의 되물림은 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예로, 나는 우리 할머니의 가시 돋친 언어를 해석해야만 했다. 그동안 거칠고 다소 폭력적인 할머니의 언행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스위스와 프랑스의 다정다감한 할머니들을 만나며 다시 생각하게 됐다. 손자 손녀는 물론이고 자녀들과 며느리, 사위, 각 사람을 대하는 언행은 인격적이었으며 존중과 배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모습을 일 년 동안 보고 살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를 마주했는데,

'어쩜 말을 저렇게 하실까......!'

역으로 문화 충격이 왔다. 세세히 다 적을 필요는 없겠지만 할머니는 맘 상하는 말을 퍽 잘하셨다. 매일 입으로 권투 하시는 것 같았다. 가까울수록 더 쉽게 상처 주셨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우리 할머니가 왜 저렇게 말을 하시지? 내가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가 저런 분이었나? 나에게도 할머니의 펀치가 몇 대 날아왔는데 유럽 물 먹고 평등 의식과 자존감 한껏 올라간 나는 방어를 잘했다. (그러자 할머니도 나를 대할 때 조금 조심스러워지셨다.)

심리학 전공은 아니지만 나는 감히 말한다. 우리 할머니 세대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안고 살아왔다고. 일본의 압제, 6.25 전쟁, 독재 정치와 민주화 운동, IMF, 등등 그 모든 역사를 지나오며 맘 편히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할머니의 거친 언행은 당신이 살아온 불안한 시대를 견디게 한 방어체계 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거친 인생을 지나오며 누적된 분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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