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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프스코댁 다이어리

해외이사 - 내 26년을 37kg 으로 압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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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갈 때 어떻게 짐을 싸야 할까?

내 평생을 살아온 우리나라를 뒤로 하고 떠나려는 사람은 짐을 도통 어떻게 싸야하나?

내가 한국을 떠날 땐 나와 신랑의 미래가 확실히 정해져있지 않았다.

최소 6개월 스위스에서 살건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신랑이 하는 일과 여러 복잡한 상황들이 얽혀 우리의 미래는 굉장히 불투명했다.

하나 확실한 건 우린 한국을 떠난다는 것. 

한국으로 금방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내 26년을 캐리어에 넣기 시작했다.

보통 위탁수화물 용량은 24kg. 에티하드는 30kg.

기내 수화물은 7kg까지.

그래서 에티하드를 선택했는데 그래도 26년을 37kg에 다 넣기란 턱없이 부족했다.

 

우선 나는 옷부터 골랐다.

제네바의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물가를 기억하며

최대한 지출을 줄이기위해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또 쌌다가를 반복했다.

 

봄, 가을 두 시즌에 입을 수 있는 옷을 스타일이나 기능 안겹치게 하나씩.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니 다섯 벌.

겨울코트와 점퍼도 하나씩.

잠옷은 운동복으로도 쓸 수 있는 거

기모스타킹은 내복 겸용으로 (난 추위를 무지 잘타니까) 쓰고

결혼식같은 때 입을 수 있는 예쁜 원피스도 두 개 정도...

 

다 챙기고 나니 상, 하의 다 해서 22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사계절을 나기 위해 입을 수 있는 옷 최소치가 바로 22벌이라고.

여행을 떠날 때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말도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난 참 많이 싸들고 간다.

이렇게 미니멀리즘을 연습하다보면 

나중에 지팡이 하나만 달랑 들고 갈 수 있을 것도 같다.

 

로션은 샘플 왕창 챙겨 무게를 덜었다.

드라이기는 가서 중고로 구하지 뭐.

고데기는 원래 잘 안쓰니 패스.

목욕제품들은 가서 사는게 쌀 것 같아 패스.

 

한국음식은!?

원래는 된장, 고추장, 참기름 꼭 싸가고 싶었는데

무거운 애들이라 포기... 사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짐이 이미 꽉 차 있었다.

 

정말 국제 이사를 한 번 하려니 생각할 게 너무 많았다.

주방도구, 침구류, 보던 책들, 등등.

왠만한건 중고시장에서 사기로 하고 진짜, 지이이인짜 필요한 것만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챙겼다.

신랑네 식구들이랑 친구들 줄 선물도 포장지 다 까고 내용물만 챙겼다.

우리 가방에 가장 무게가 나갔던 것은 신랑 책이었다. 

꼭! 가져가야한다고 하니 말릴 수도 없고...

가방 무게가 금방 늘었다.

(신랑에게 책디톡스가 필요하다.)

 

보통 이민하시는 분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비빌 시댁과 신랑 친구들이 있다는 거겠지.

우리 신랑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제로에서 시작하는 건 아니었다.

그 점이 큰 도움이 되긴 했다.

수건이랑 이불은 시누이네가 선물로 한 세트씩 줬다.

신랑이 쓰던 물건들도 가지고 왔다.

식기류랑 가구는 중고로 구하려 해도 만만치 않게 돈 들어갔을 텐데

어머님 친구분이 이사하시면서 많이 주고 가셔서 시간도 돈도 절약할 수 있었다.

 

"참 가볍네. 인생이라는 게."

 

나는 짐을 최대한 심플하게 싸며 미련과 욕심이라는 것을 한국에 떨구고 온 듯 하다.

이젠 뭐가 없어도 그냥 없는가보다 하고 산다.

미련과 욕심이 비워진 자리에 행복과 감사가 들어오는 건 뭐 말 안해도 뻔히 다 아는 얘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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