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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프스코댁 다이어리

스위스에서 떡국을 - 내 손으로 뽑은 가래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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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당근 떡국이지~!

 

오늘이 음력설이라고 했더니 다들 설에는 뭐해먹냐고 물었다.

설에는 떡국이죠. 희고 기다라며 쫀득쫀득한게 포동포동하기도 한 가래떡. 이 긴 떡은 장수의 상징이라 새해마다 먹는 거예요. 이걸 먹어야 비로소 우리는 "한 살 먹었다"라고 말하는 거고요.

그런데 제네바에서 가래떡을 살 수 있나. 없다. 그동안 한국 음식 별로 그리워하지 않았는데 설날이라 그런가 유독, 별나게 떡국이 먹고 싶었다.

 

 

가래떡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유튜브에 찾아보니 미쿡맘께서 시연하신 가래떡이 있었다.

 

하루 반나절 정도 충분히 불린 쌀, 소금... 압력밥솥에 물을 자작하게 넣어 밥 짓기... 어, 그런데 난 압력밥솥이 없다! 친구 하나는 유학길을 떠날 때 검정색의 그 무거운 쿠쿠밥솥을 싸들고 갔다. 하지만 나는 냄비밥 지을 각오를 하고 스위스에 왔기에 압력밥솥이 집에 없었다.

반죽은 제빵기로... 이런이런. 우리 집에는 제빵기도 없다. 스위스에 얼마나 오래 있을 건지도 모르는데 제빵기부터 들여놓을 수 없어 우리 집 부엌은 그야말로 소박한 스타일이다.

압력밥솥과 제빵기가 비록 없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떡국을 꼭 먹고 말테야!

비장한 마음으로 쌀을 한 가득 그릇에 담고 물을 부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팅팅 불려놨다가 냄비밥을 지었다.

반죽은 그냥... 손으로 했다. 우리나라 음식은 자고로... 손맛 아니었던가? 하하..

피자 도우 만들 때처럼 반죽하면 되겠거니 했는데 찰기가 엄청나서 그렇게 되지 않았다. 손에 엄청 들러붙는 밥풀. 나중엔 냄비가 들려 올라올 정도로 찰기가 대단했다. 반죽하기 힘들긴 하지만 이 정도 찰기면 가래떡 잘 되겠어!

 

미쿡맘은 반죽을 랩에 싸고 포일 심지 안에 넣어 모양을 냈다. 나는 어째 포일 심지도 없다. 그냥 랩에 싸서 양쪽을 사탕 봉지처럼 봉하고 김밥 싸듯 말았다. 제법 모양이 나오자 마음이 기뻤다! 와! 떡국 먹을 수 있겠구나!

 

점심때 끓여놓은 홍합탕 국물이 있었다. 다시마도 없고 멸치육수는 무슨, 말려놓은 생선 하나 보이지 않는, 말려놓은 것이라고는 고기뿐인 이 나라에서, 해산물은 너무 비싸고 참치캔 통조림이 그나마 싼 내륙의 나라에서 홍합육수면 됐다. 이걸로 충분하다.

 

 

 

 

전기스토브에 불을 올렸다.

양파와 파를 송송 썰어 넣었다.

홍합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짭조름한 냄새 풍길 때 계란 두 개 탁탁!

(나름) 곱게 썰은 수제 가래떡 퐁당당!

국물 맛을 보니 아- 기가 맥힌다.

내 고향 부산이 입안에 밀려오며 갈매기가 끼룩끼룩하는 듯하다.

완성된 떡국을 국그릇에 부었다.

저번에 김밥 싸고 남은 김을 대충 찢어 넣었다.

 

오잉? 그런데 떡 다 어디 갔어?

배가 별로 안 고파 적게 넣긴 했지만 이렇게 아예 안 보일 정도로 적게 넣진 않았는데.

국자로 휘휘 저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얀 알갱이 같은 게 둥둥 떠오른다.

 

 

아아... 밀도가 너무 낮아 다들 풀어져 국물 속으로 사라져 버린 거였다.

미쿡맘이 왜 압력밥솥에 제빵기 썼는지 알겠다.

가래떡도 아니고 밥도 아니고... 식감이 참 희한했다.

그래도 고향 생각나게 하는 떡국, 2020년 새해를 맞이하며 한 그릇 자알 먹었습니다.

나도 한 살 제대로 먹은 거야 그럼.

우리 신랑 한국문화도 가르쳐주고 히히

 

내일은 울 집에 중국 언니네가 온다.

우리 이웃인데 같이 설 쇠기로 했다.

어설픈 떡국과 함께 갈비찜, 산적, 배추전을 내놓을 참이다.

언니는 만두를 들고 올 것 같다.

 

모두들 즐겁고 안전한 설날 보내세요!

잘 뽑은 가래떡으로 만든 떡국 많이 먹고 나이도 많이 드세욧!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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