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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의 손때와 추억 덕지덕지 뭍은 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신랑은 이 동네에서 태어나 이 동네에서 자랐고 부모님이랑 누나네 식구가 아직도 이곳에 산다.
구석구석이 다 그의 놀이터였기에 들을 이야기가 참 많았다. 스위스는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가 다닌 초등학교는 1881년 첫 개교 때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그렇기에 그가 뛰어놀았던 장소 그대로를 가보며 빛나는 금발에 푸른 눈빛을 하고 보조개 핀 얼굴로 개구쟁이 짓을 했을 그를 상상해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신랑의 추억보따리를 풀게 한 건 그의 가족과 친밀했던 한 남자의 장례식. 그가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그를 끝내 쓰러뜨렸다.
신랑은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와 같은 동네에서 살았고 초등학교 바로 맞은편에 있는 그의 집을 볼 수 있었고 그와 소방대원 자원봉사일을 했고... 수도 없이 밟았을 길을 우리는 오늘 다시 밟지만 누군가는 영영 떠나버렸다.
길은 이야기를 간직하는 듯 하나 그 길 위에 우리는 왔다가 갈 뿐이구나. 쌓인 이야기들도 서서히 지워지겠지. 말해줄 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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